[특파원코너] 미국산 도시락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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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열차로 여행하면서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도시락이다.
정거장이나 열차 내에서 파는 상품이니 그저 그런 수준일 것이란 선입견을 갖고 대하면 오산이다.
열차가 서는 주요 정거장에는 에키벤이란 이름의 고유 도시락이 거의 어김없이 나와 있다.
그 일대의 특산물을 재료로 사용하면서 외지인들에게 자기 고장을 선전하는 수준높은 상품들이다.
그런데 이 에키벤을 놓고 최근 일본에서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다.
원인은 미국에서 미국산 쌀과 부재료를 이용해 만든 냉동 도시락 때문이다.
일본산보다 값이 싼 미국 유기재배 쌀과 자연식재로 만들어진 이 도시락은 JR동일본 자회사인 니혼 레스토랑 엔터프라이즈가 수입해 오는 17일부터 판매한다.
식자재 값이 일본보다 훨씬 저렴한 미국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가격도 월등히 저렴하다.
보통 1천엔 안팎인 일반 도시락에 비해 절반 수준을 조금 넘는 6백엔에 판매될 예정이다.
회사측은 다른 외식업체들의 저가공세를 견디다 못해 미국산 도시락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뜻밖의 역풍은 정치권에서 불어왔다.
쌀 생산 고장에 지역구를 둔 자민당 의원들은 "일본 쌀이 남아 돌아가는데 미국산 도시락이 웬말이냐"며 발끈하고 있다.
농수성 역시 '유감'이라며 정치권에 동조 사인을 보내고 있다.
미국산 도시락은 하루 1만개 판매 예정이어서 쌀로 환산한 수입량이 연간 3백~4백t에 해당된다.
일본이 북한에 지원키로 한 50만t에 비하면 비교의 의미조차 없는 양이다.
중국과의 무역분쟁을 부른 지난 4월의 세이프 가드 발동때 일본은 표밭을 의식한 의원들이 보호주의 깃발을 앞장서 쳐들었다.
이달 하순에 치러질 참의원 선거 때문이다.
미국산 도시락은 동전 한닢도 벌벌 떠는 일본 서민들로부터 환영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역구를 의식한 의원들의 표정엔 분노가 가득하지만 서민들은 양질의 저가 외국산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서민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국산 도시락을 성토하는 자민당의원들의 반응은 '정치인들에게 소중한 것은 오직 표밭'이란 사실을 재삼 일깨워주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