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우승컵을 들고 있다"


9일 밤(한국시간)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결승에서 패트릭 라프터(호주)를 3시간여 동안의 혈투 끝에 3 대 2로 물리치고 정상에 오른 고란 이바니세비치(30·크로아티아)는 경기가 끝난 뒤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14년째 윔블던에 도전해온 '노장'은 드디어 맺힌 한을 풀어낸 것이다.


이바니세비치는 한때 세계 2위의 강호였다.


그러나 메이저대회,특히 윔블던과는 운이 닿지 않았다.


88년부터 도전을 시작해 그동안 3차례나 결승에 올랐지만 92년 앤드리 애거시,94년과 98년에는 피트 샘프라스(이상 미국)의 벽에 막혀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나이가 들면서 플레이가 단조로워지고 체력부담은 점점 더 커졌다.


어느덧 랭킹은 1백25위까지 떨어졌고 투어에서 퇴물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신예들에게 밀리면서 성격도 점차 격해졌다.


지난해 11월 삼성오픈에서 이형택(삼성증권)과의 경기 도중 게임이 안풀리자 가져온 라켓 3개를 모두 부러뜨리고 기권패한 일은 아직도 한국팬들 뇌리에 생생하다.


이번 윔블던 결승에서도 4세트 중반 더블폴트를 기록하자 라켓을 집어던져 벌금을 물어야 했다.


하지만 윔블던은 노장에게 다시 기회를 줬고 이바니세비치는 어깨부상에도 불구하고 시속 2백10㎞의 강서브를 퍼부으며 자신에게 온 4번째 기회를 살려냈다.


결승 상대였던 라프터(호주)는 "이바니세비치는 자기 자신과 서브에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그를 평가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