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모니터업체인 국제경영연구원(IMRI)의 유완영(38) 회장은 남·북한 경제교류의 물꼬를 트는 벤처기업인이다. 유 회장은 평양 대동강구역에 컴퓨터 모니터 완제품 공장과 인쇄회로기판(PCB)공장,포장용 발포수지성형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3일 일본 조총련계가 주최한 과학학술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강연을 했다. 조선인과학기술협회는 IMRI가 어떻게 북한에 진출해 사업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유 회장을 초청했다고 한다. "이번 강연에서 남한의 기술과 북한의 인력,재일 한국인들의 자본을 활용해 북한에 성공적인 사업모델을 만들어 보자고 제의했습니다" 유 회장은 남·북한이 힘을 합치면 세계적인 경쟁체제를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지난 98년 평양 대동강 근처에 컴퓨터용 모니터 공장 건설에 나서면서 대북사업과 첫 인연을 맺었다. IMF 위기로 한창 어려운 때였다. "남·북관계가 제3국을 거쳐서만 이뤄지는 게 답답했습니다. 말로 하는 통일운동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해 보고 싶었지요" 그는 대북 투자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컴퓨터 모니터,인쇄회로기판에 이어 세번째인 완제품 포장용 발포수지성형 공장도 지난 5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이들 공장 가동을 위해 그는 20여차례나 북한을 다녀왔다. "북한 생산제품은 우리 기술표준원이 인정할 만큼 품질이 우수합니다. 하지만 부품소재산업 기반이 조성되지 않아 부품조달비가 비싼 게 걸림돌입니다" 북한에 투자해 당장 돈을 벌기 보다는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대북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게 유 회장의 설명이다. 유 회장은 모스크바 유학 때 대북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사회주의 문화를 경험하면서 공산권 시장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사업의 첫 무대는 붕괴 직전의 옛 소련이었다. 현지기술을 한국에 연결해 주는 사업에 손을 댔다. 보드카를 수입해 팔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부도를 맞고 말았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단돈 5백4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북 투자자문회사에서 일하다가 지난 96년 귀국,컨설팅사인 IMRI를 설립했다. IMRI는 국내의 TV브라운관 공장을 인수,컴퓨터 모니터 공장으로 개조했다. 이 공장은 올해 지난해(4백27억원)의 2배가 넘는 1천억원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지난 1·4분기중 1천8백41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민간인들의 사회·경제적 교류가 보다 활발해져야 50년 분단의 장벽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유 회장은 "대북사업을 하는 자신이 친정(남한) 자본으로 시댁(북한)에 가서 일하는 며느리와 같다"며 남과 북 양쪽을 외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유 회장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활동중이며 지난해 대학과 사회단체 등에서 북한사업과 관련,1백20여 차례나 강연을 했다. 대북 사업전문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