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파산부가 화의기업 정리에 나선 것은 최근 들어 그 '필요성'에 대한 지적이 여러 군데에서 제기된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사실 법정관리 또는 화의기업들 가운데 일부는 이자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을 이용,덤핑을 통해 시장을 교란시키는 등 정상적인 기업들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법원으로서는 비정상적인 영업을 하거나 경쟁력 없는 화의기업들을 차제에 퇴출시켜 시장의 왜곡을 막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각에서는 전국 3백30여개 화의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화의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법원이 마치 기업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처럼 오인받고 있다는 부담감도 법원이 이번 조치를 내놓은 또다른 배경이 됐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화의기업은 법정관리와는 달리 일단 인가 뒤에는 법원의 통제에서 벗어나 반기마다 '화의조건 이행상황 보고서'만 제출하면 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이같은 화의기업에 대해서마저 이행부진 책임을 법원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법원은 불만이 있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나 어쨌든 정부가 '상시구조조정시스템'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법원도 화의기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함으로써 정부 정책을 '측면지원'하겠다는 의지는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직접 관리중인 법정관리 기업들에 대해서는 정부의 방침과는 상관없이 정리계획안에 따라 독자적으로 처리해 나갈 방침이다. 최근 '법정관리기업 연내 정리' 등 진념 부총리 발언이 나오자 파산부는 서둘러 각 법정관리인들에게 공문을 발송,"법정관리의 종결·폐지를 결정할 권한은 오직 사법부에만 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번 조치로 그동안 화의 인가만 받고 지지부진하게 운영돼 온 화의기업들에 대한 정리 작업은 급류를 타게 될 전망이다. 파산부 관계자는 "이번에 정리될 화의기업의 정확한 숫자는 보고서를 받아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화의 채무를 제대로 갚지 못하거나 아예 영업조차 하지 않는 기업들은 물론 앞으로 화의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기업들에 대해서도 법원 직권으로 화의를 취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 --------------------------------------------------------------- [ 용어풀이 ] 법정관리와 화의=모두 기업이 스스로 회사를 꾸려가기 어려울 만큼 빚이 많을 때 일정 기간동안 빚을 갚는 것을 유예받고 회생의 기회를 갖는 제도다. 그러나 법정관리는 법원이 법정관리인을 선임해 아예 경영권을 갖고 기업의 재산을 관리하는데 비해 화의는 기업과 채권자간 '자체협정'으로 독립 운영된다. 종전경영인은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며 반기마다 화의이행 실적을 법원에 보고하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