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하나,어조사 하나를 놓고 하루 종일 싸울 정도입니다. 초등학생도 풀 수 있는 문제에 차관들까지 나서도 답이 안 나오더군요" 지난 13일 정부 부처간 정보기술(IT) 업무 영역 조정 합의문이 발표된 뒤 재정경제부 관계자가 내뱉은 푸념이다.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가 서로 '이 업무는 우리 몫'이라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통에 회의는 제자리만 맴돌았죠…" 재경부가 이토록 골치 아픈 부처간 IT 업무영역 조정에 나섰던 이유는 간단하다. 부처마다 '먼저 차지하는 자가 임자'라는 식으로 똑같은 정책을 추진해왔던 데다 이름만 다른 산하단체까지 경쟁적으로 설립하는등 혼선이 극에 달한 때문이었다. 당연히 업무혼선과 예산낭비를 불렀고 관련업계조차 '어느 부처에 줄을 서야할 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두달간 4차례의 차관회의와 7차례의 실무조정회의를 통해 조정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나마의 조정안도 말 장난으로 채워진 미봉책이긴 마찬가지여서 자율적인 갈등구조 해소는 영영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최대 현안이었던 '포스트 PC 산업'은 정통부가 소프트웨어 관련 업무를 담당하되 산자부는 일반산업제품과 가전제품 관련 업무를 맡는 식으로 쪼개졌다. 국가표준은 산자부가 운영하던 한국산업규격(KS)체제로 일원화하되 정통부 중심으로 관련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향으로 봉합됐다. 반대로 전자화폐 표준화는 정통부가 운영하던 전자지불포럼으로 일원화하되 위원회 구성은 산자부가 주도하도록 했다. 조정을 거친 18개 항목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조정됐다. 하나씩 주고 받거나,동일한 사안을 공동관장하는 형태다. 어떤 부처든 일관된 정책을 펼치기 힘든 구조여서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경제관료 1백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4.2%가 '정부부처의 세분화가 정책혼선을 빚는다'고 답했었다. 또 '산자부-정통부-과기부를 합쳐야 한다'는 응답은 1백16명에 달할 정도였다. IT 업무영역 조정의 근본적인 해법은 이 설문이 보여준 결과가 아닐까. 오상헌 경제부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