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이 제정된지 반세기를 넘어 53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9차에 걸친 헌법개정이 있었고 지금도 정치권 일각에서 내각제 개헌론이 수시로 제기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일제의 식민지를 벗어난 상황에서 경황없이 제정된 헌법이었고,민주적 헌법에 대한 이해와 경험 부족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반세기였다. 헌법의 제정과정에서부터 이승만의 집권욕으로 인한 왜곡이 있었고 이후의 헌법개정은 발췌개헌,사사오입개헌,3선개헌,유신헌법 등 집권연장의 목적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오직 국민의 힘에 의한 헌법개정,즉 1960년 4·19 혁명에 의한 제3차 개헌과 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인 제9차 개헌만이 정상적 개헌이었다. 이러한 헌정사가 보여주듯이 우리 국민은 독재적 권력의 압제와 이에 대한 투쟁으로 점철된 세월을 통해 민주화의 과정을 밟을 수 있었고,헌법 또한 여러 차례의 개헌을 겪는 과정에서 점차 정상적인 모습을 찾았다. 그러나 아직도 헌법의 의미와 정신이 우리 사회에 올바르게 뿌리내렸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은,그것도 국민을 주권자로 인정하는 민주주의 헌법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가조직과 법 질서를 창출하는 초석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 국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어느 방향으로 발전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정하고 있는 것이 헌법이다. 즉 헌법이란 바람직한 국가공동체의 모습을 설계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헌법의 제정과 개정은 항상 주권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검토돼야 한다. 즉 국민이 바라는 국가공동체,국민이 필요로 하는 법 질서가 어떤 것인지에 따라 헌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정치권의 개헌논의는 이러한 헌법의 의미·정신을 벗어난 경우가 많으며 그 이유는 정치문화의 미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헌법은 함부로 개정돼서는 안되는 국가의 근본법이다. 개헌은 오로지 헌법의 의미에 따라,헌법의 기본이념에 부합되게,그리고 과거 헌정사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는 신중함 속에서 현명하게 추진돼야 한다. 그에 대한 확신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헌법개정을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할 것은 통일헌법에 대한 장기적 준비다. 그런데 최근의 통일논의는 대북협상 등과 관련된 정책적 접근방식 및 통일이 가져올 경제적 파급효과 등에 관한 사실적 검토에 집중되는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 물론 통일과정에 있어서는 그 사실적 전제조건과 통일의 방식,파급효과 등에 대한 검토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적 검토와 평가만으로 통일에 대한 모든 준비가 갖춰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통일과정 및 그 조건과 방식 등에 관한 통일정책이 정당성을 확보하고 계속성과 안정성 및 예측 가능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를 법적으로 기초지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통일과정에 대한 법적 접근도 다양한 각도에서 시도될 수 있다. 하지만 통일과정을 크게 통일준비 과정과 통일진행 과정으로 나누어 볼 때 우리가 당면한 통일준비 과정에서는 1차적으로 그 과정의 입법적 정비,통일준비기구의 법제도적 정비,통일준비 활동의 법치국가적 근거지움과 통제 등이 요구될 것이며 이에 기초하여 통일과정을 한 단계씩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통일과정에 대한 법적 접근에 있어서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할 것이 통일헌법 제정의 문제다. 통일과정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와 검토가 때로는 상반되는 정책의 논거로 이용되고,그 결과 적지 않은 혼선과 혼란이 야기되는 것은 무엇보다 통일국가의 형성과정,나아가 그 과정의 전과 후를 포함한 전체적 국가발전 과정을 하나의 커다란 틀 안에서 체계적으로 일관성 있게 포섭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행 헌법하에서의 국가목표와 발전방향을 고려하면서 통일국가의 전체적 마스터 플랜을 통일헌법의 형태로 정리하여 고찰하는 것이 거시적 통일논의에서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youngchang@facstaff.wisc.edu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