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창이다.


경기침체로 어려운 살림살이에 아귀다툼이 난무하는 세상사가 일상을 더 피곤하게 만든다.


'뭐 좀 시원한 게 없을까'하고 궁리해봐도 풍진 세간에선 답을 찾기 어렵다.


해답은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마음'에 있을 터이다.


산중에서 수행중인 고승대덕을 찾아 청량한 대답을 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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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과 농월정으로 유명한 경남 함양군 안의면.


시외버스정류장에 내려서 택시운전사에게 "노스님 토굴에 가주세요"라고 하자 두말 않고 시동을 건다.


노스님 토굴이란 조계종 원로 성수(79) 스님이 정진중인 안의면 황대마을의 황대선원.


장마비로 불어난 계곡물 소리가 막힌 가슴을 확 틔어줄 만큼 시원스럽다.


해발 1천1백93의 황석산 자락에 터잡은 황대선원은 여느 절집같지 않다.


7년전 잠시 머물 요량으로 농막 하나를 빌려쓰다 지금은 건물이 7개로 늘었지만 일주문도 없다.


법당 겸 선원은 벽돌과 자연석으로 지은 길쭉한 단층 반양옥집이고,요사채는 공사장 사무소같은 가건물이다.


당호(堂號)도 없는 조실당에서 노장(老長)에게 절을 올리자 "절은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좋은 말씀을 들으러 왔다"며 법문을 청하자 노장은 대뜸 "'사람 인(人)자'의 뜻을 아느냐"고 했다.


"옛부터 사람같지 않은 사람을 보고 '의리·도덕도 없는 놈'이라고 하지 않았어? 인(人)이란 의리·도덕을 지키는 걸 말하는 거야.의리란 어린 사람이 웃사람을 받들고 공경하는 것이고,도덕은 웃사람이 아랫사람을 가르치고 용서하는 것이지"


사람이란 위,아래가 서로 공경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노장은 요즘 부모들 잔소리만 늘었지 사람을 못키우고 있다고 나무랐다.


노장의 출가 때가 궁금했다.


"어릴 때 동네 어른들로부터 원효대사 이야기를 듣고서 13살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원을 세웠지.열아홉살때 어른들이 장가를 보내려 해 집을 나왔고 원효같은 도사를 찾으러 1년 동안 헤매기도 했어"


그래서일까.


그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통도사 내원암에서 출가했다.


당시 내원암에 있던 은사 성암 스님이 "큰 일을 하려면 글을 배워야 한다"며 내놓은 것이 초발심자경문.


지눌의 '계초심학인문',원효의 '발심수행장',야운의 '자경문'을 3일만에 외워버렸다.


노장은 "부서진 수레는 갈 수가 없고 늙은 몸으로는 닦을 수가 없다(破車不行 老人不修)"는 원효 대사의 얘기를 들려주며 "젊을 때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화두를 타러(받으러) 오는 대중은 무수하지만 견성(見性)하는 사람은 드물어.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 목을 베러와도 좋아.시작부터 도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닦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10년을 살아도 도(道)가 되는지 안되는지도 몰라"


노장은 "절이란 늙어죽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이라고 했다.


늙어죽지 않는 법이 뭐냐고 묻자 답은 딱 한마디,생사자재법(生死自在法)이다.


생사의 윤회법에서 벗어나 열반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불살생(不殺生)의 참뜻을 아는가.다들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고만 알고 있지만 그게 아니야.남의 목숨 뿐만 아니라 자기를 죽이지 말라,곧 죽지 말라는 뜻이지.그건 생사 밖의 도리를 깨우쳐서 나고 죽는 고통의 바다(苦海)에서 빠져 나오라는 뜻이야"


노장은 그러면서 물질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물질인 몸뚱이는 팔다리가 떨어져나가도 살지만 정신은 1초만 나가도 '송장'이 되고 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온갖 좋은 것으로 몸을 치장하면서 정신은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른 채 산다는 얘기다.


"자기성품을 아는 것,곧 견성이 중요해.내가 나를 만나면 어느 누구를 만난 것보다 좋고 반가울 수가 없어.그러려면 자기 목을 뚝 떼어 나무에 걸어놓고 덤비는 용기와 기백,노력이 필요하지.그냥 시부적 시부적해서는 열반은 커녕 도가 뭔지도 모르고 세월만 보내게 돼.수행자는 어미 사자를 물어죽일 수 있는 사자 새끼여야 해"


노장은 "부처님은 지혜복을 지으라고 했지 물질복을 지으라고는 하지 않았다"며 "복을 잘못 지으면 3생을 버리게 된다"고 했다.


물질만능,물량주의에 대한 경계의 뜻으로 들렸다.


선사가 보는 속세의 모습은 어떨까.


"예전에는 속세에 사는 사람들이 딱해 보였으나 지금은 세간,출세간이 둘이 아니야.사바세계가 전부 선열당(禪悅堂)이고 극락세계라,사바세계에서 도를 닦아야지 극락같이 편안한 곳에서는 힘을 얻을 수가 없어"


노장은 "다들 살기 어렵다고 말만 하지 말고 자기 정신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며 세상사람들을 경책했다.


살기 어렵다면서도 기름 한방울이라도 아끼자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


들어오는 게 닷냥이면 쓰기는 석냥만 해야 하는데 지금은 닷냥 수입에 열냥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모두들 노력은 않으면서 댓가만 바라고 도둑질을 해서라도 부자?되려고 한다"며 "돈이 사람을 버려놓았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