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패망 '秘史'] (2) '운명의 7월19일 (下)'..悲運의 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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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지금 2년전 99년7월18일을 지나고 있다.
바로 하루전 김 회장과 이 위원장의 독대가 있었던 터였다.
이 독대를 통해 공은 당국으로 넘어왔다.
김회장이 사재와 경영권까지 모두 내놨으니 이제 이헌재 위원장이 답을 내놓을 차례였다.
그러나 당국으로서는 이미 빼았을 것은 다 뺐아두었기 때문에 속내 생각은 오히려 홀가분했다.
대우측은 전날의 독대를 통해 회생의 전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당국은 달랐다.
이제 대우 해체의 수순으로 갈 뿐이었다.
그것은 대우를 둘러싼 모든 관계자들이 가졌던,그리고 지금도 논쟁하고잇는 첨에한 시각차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정부가 과연 언제쯤 대우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풀어볼 생각이지만 여기서는 일단 7월18일과 운명의 19일로 돌아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 D-1 ]
일요일인 18일 저녁 7시께.
이호근 제일은행 상무는 서류철을 들고 은행으로 돌아오면서 대우전담팀 직원들에게 전원 출근하도록 지시했다.
이 상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벌써 2년전부터 대우그룹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보고 있던 중이었다.
현금흐름이며 영업이익률은 언제나 먹구름이 가득했다.
김우중 회장과는 몇차례 독대도 했다.
다음은 이 상무의 증언.
"회장님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수도없이 호소해 왔어요. 은행원이 뭘 알겠습니까마는 이미 헤어나기 힘든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서류철에는 놀랍게도 A4 규격의 종이 한장이 달랑 들어있었다.
한 장짜리 이 '실행계획'(액션플랜)에는 D데이인 19일의 시간대별 행동요령이 빼곡이 쓰여져 있었다.
각 시간대별로 대우그룹과 금감원, 제일은행이 각자 해야 할 일, 기자회견 시간과 채권단회의 소집 계획, 주요 금융기관별 대우 회사채.CP 보유내역 등이 담겨 있었다.
빼곡한 연필 글씨도 덧쒸어졌다.
제일은행 직원들은 1년전 기아사태가 터진 이후 처음으로 휴일에 출근하는 터였다.
고참 직원들은 "올 것이 왔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대우가 당좌계좌를 트고 있던 제일은행 남산지점에 만기가 돌아오는 초단기 CP(기업어음)가 이미 하루 수천억원에 이른터여서 감은 잡고 있었다.
제일은행 남산지점은 공교롭게도 대우빌딩 안에 있었다.
제일은행은 98년 초부터 한보 우성 삼미 기아 등 거래업체들의 줄부도에다 예금이탈, 해외매각 협상 등으로 지칠대로 지친 터였다.
유시열 당시 제일은행장은 "이미 여러차례 대기업 부도를 겪어 5대 그룹에 속하는 대우라고 새삼 더할 것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제일은행 임직원들의 고생은 은행 소유권 자체가 뉴브리지에 넘어간 그해 말까지 계속됐다.
나중에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는 대우그룹팀 소속 직원 2명이 일하다 쓰러지기도 했다.
이렇게 '운명의 7월19일'이 밝아왔다.
제일은행의 대우담당 직원들은 남산위로 하늘이 희끄무레 밝아 오는 것을 봤다.
긴밤이 지났지만 더욱 긴 하루가 시작될 터였다.
굳이 이날을 D데이로 잡은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연휴는 굴러가던 어음도 일단은 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기아사태 역시 광복절 연휴 다음날 처리됐다.
[ D 데이 ]
아침 8시.
대우 채권액이 많은 12개 메이저 금융기관장들의 회동으로 날이 밝았다.
장병주 (주)대우 사장, 정주호 구조조정본부장과 제일 한빛 외환 산업 서울 등 5개 은행장, 회사채 보유액이 많은 7개 투신사 사장이 힐튼호텔 3층 설악산룸으로 모여들었다.
조찬을 겸한 대책회의가 시작됐다.
이날 하루의 시간대별 행동요령을 점검하는 시간.
마치 작전회의를 짜는 듯했다.
오전 10시 장 사장.정 본부장이 대우빌딩에서 '대우그룹 구조조정 가속화 및 구체적 실천방안'이라 제목으로 10조원의 담보제공 사실과 정상화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김 회장이 10시 30분 기자회견을 갖도록 돼 있었다.
김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장 사장이 김회장의 뜻이라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11시 금감위는 '대우 발표에 즈음하여'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20개 항목의 문답자료까지 첨부됐다.
이어 김상훈 금감원 부원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김 부원장은 "채권단이 경영권 포기각서를 받는다. 구조조정이 성공하든 못하든 6개월내에 김 회장이 물러나게 된다"고 못박았다.
이헌재 위원장이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는 "대우가 시한폭탄이라면 이미 뇌관은 제거했다"고 말했다.
눈에 띠는 것은 대우그룹의 발표문까지 금감위가 쓰는 아래아한글 신명조체였다는 점이다.
오후 4시 은행연합회에서 70개 금융기관 대표들이 모인 대우 채권단회의가 열렸다.
놀랍게도 일부 투신사들이 만기연장을 거부했다.
투신사들이 21조원 이상의 회사채 CP를 보유해 전체 채권액의 76%를 차지한 반면 은행은 21%(6조원)에 불과했다.
채권단의 의결정족수는 그러나 채권액의 75%였다.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이 속이 탔다.
회의는 지연됐고 청와대와 금감위에서 독촉전화가 쏟아졌다.
결국 밤 8시가 돼서야 채권액 기준으로 80% 이상의 동의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대우사태의 첫날이 지나갔다.
그러나 대우에 지원키로했던 4조원은 일주일 뒤인 26일에야 돈이 나갔다.
이에 앞서 7월1일엔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경제5단체장의 간담회가 열렸다.
단체장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전경련 회장인 김우중 회장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 단체장의 증언.
"김 대통령이 급기야 '김회장은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까'라고 물어봤지만 김 회장은 들리지 않는 소리로 몇마디 중얼거리다가 끝내 말문을 닫았어요"
특별취재팀 =정규재 경제부장(팀장) 오형규 이익원 최명수 조일훈 김용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