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고,물가를 안정시키는 범위 안에서 경기를 활성화해 내수를 진작시켜야 한다"(16일 김대중 대통령) "경기활성화가 필요하지만 대대적 적자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은 바람직하지 않다"(18일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대통령과 경제팀 수장인 진 부총리가 거시 경제정책 방향에 상반된 얘기를 하고 있다. 대통령이 극히 이례적으로 내각에 내수진작 대책을 지시했지만 진 부총리는 기존 거시정책을 수정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경기침체 속에 재정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데 최고위층의 엇갈린 사인으로 국민들의 정책신뢰를 더욱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가 높다. 헷갈리는 처방=미국 등 해외 주요국들의 경기회복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경제에 대한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한국경제의 4.4분기 회복론이 이젠 내년 1.4분기도 자신할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주류다.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경기는 내년 2.4분기 이후에나 기대된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내수부양 지시는 경기하강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만 물가안정이란 단서는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그러나 "수요요인에 의한 물가압력이 거의 없어 재정을 풀어 내수를 진작해도 물가를 자극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경제관료들이 결심만 하면 김대통령의 내수경기 진작 지시를 이행할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진 부총리의 선택=경기진작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2차 추경을 편성하는 등의 본격적인 재정정책은 피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초과 징수된 세금을 재원으로 마련한 1차 추경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는데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현실론이 가장 큰 바탕이다. "거짓말 콤플렉스"도 주된 요인이다. 그동안 줄곧 "인위적 경기부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혀온 터라 부양이란 카드를 선택하면 "거짓말 했다"는 비난이 불보듯 뻔하다. 진부총리의 선택은 "표나지 않게" 경기부양 효과가 있는 정책들을 추진하는 것이다. 우선 올해 정부 예산은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두 쓸 예정이다. 매년 정부 예산 중 10조원 가량은 불용.이월되고 있다. 따라서 불용.이월을 없애면 예년에 비해 10조원 가량을 더 쓰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 공공기금과 공기업을 동원해 경기부양 효과를 노린다. 국민주택기금 정보화촉진기금 등 사업성기금이 내년이후 시행할 사업들을 올해로 앞당겨 집행하도록 하고 한국전력 가스공사 등의 설비투자도 조기집행을 유도할 방침이다. 토지공사 주택공사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등의 건설투자사업도 가급적 올해 중에 많이 하도록 설득할 계획이다. 올해 주요 사업성 기금의 사업지출 규모는 6조원 가량이고 정부 투자기관의 투자규모는 15조원.이들이 내년 계획의 10%만 올해로 앞당겨도 올해 투자규모를 감안할 때 줄잡아 2조원 가량의 자금이 동원될 수 있다. 이 밖에 연기금이 부동산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건설경기 부양효과도 노린다는 전략,서비스 산업 활성화를 위해 이 산업에 대한 제도상 차별을 없애주는 방법 등이 추진되고 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