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시부 리조트'] 야자수 그늘에서 편안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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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은 목마름이 정수리까지 차오를 때 불쑥 내던져진 말레이시아행 7박8일.
가는 곳에 대한 기대감보다 길 떠남에 의미를 두고 여행꾸러미를 챙겼다.
인천공항에서 두 번의 비행기를 갈아타고 6시간30분만에 도착한 말레이시아의 남부관문 조호바루.
이웃나라 싱가포르와 1천50m 육교로 연결되어 있는 곳.
사롱을 걸친 여성이나 이슬람사원 이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불편했던 기내식사와 빡빡한 일정으로 피로는 더해가고 말레이시아에 대한 실망감이 슬슬 일 무렵 조호르 주가 운영하는 시부섬 리조트에 도착했다.
야자수 숲, 탁트인 바다, 조용한 방갈로...
머리가 맑아진다.
온 몸이 달뜬다.
기내에서 코를 싸잡게 했던 열대과일 두리안의 향마저 친근하게 다가오고 야자수 그늘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말레이시아 주식인 쌀밥(말레이시아어로 나시)에 산발이라는 소스를 얹어 얼큰하게 저녁을 먹고 밤낚시를 나갔다.
태양 빛에서는 35도를 웃도는 더위가 달빛 아래선 선선함과 서늘함마저 던져준다.
적도의 밤하늘에 떠있는 달과 별빛들.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이국의 정취에 흠씬 젖어들 때쯤 오징어 낚시는 시작됐다.
칠흑의 밤바다에서 출렁이는 뱃머리를 부여잡고 오징어의 입질을 기다리는 태공망의 심정이란...
바다 한가운데 나무 기둥를 세우고 집을 지어 밤새워 낚시하는 "켈롱"이라는 말레이시아 전통낚시도 색다른 손맛을 자아낸다.
스노클링 역시 마음을 사로잡긴 마찬가지.
리조트에서 배로 5분여를 가면 시부 쿠쿠스가 나온다.
구명조끼 오리발 수경을 착용하고 호스를 입에 물고 용감무쌍하게 바닷속으로 풍덩.
아찔함은 잠시, 눈을 떠보니 발 밑에는 노란 줄무늬의 열대어가, 산호꽃 동산이 손짓을 한다.
아담과 이브의 "에덴"이 발아래 놓인 듯하다.
함께 한 동료가 해삼을 잡았다며 흥분한다.
물위를 오르니 바다는 연초록 빛 보석이다.
작열하는 태양, 새하얀 모래, 야자수가 어우러져 "열대의 에덴"을 연출한다.
천국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문득 두고 온 가족이 그립다.
함께 할 수 없음이 아쉽다.
이곳 시부섬은 번잡한 놀이시설이 없다.
1주일 일정으로 조용히 쉬었다가 재충전해 갈 수 있는 곳.
그래서 가족단위 여행이나 신혼부부에게 알맞다.
한낮의 즐거움을 삭이고, 그날 밤 소규모의 말레이식 전통축제가 열렸다.
손으로 꼼꼼히 염색한 "바틱"을 차려 입고 "도돌"이라는 코코넛 음식을 맛보았다.
두 개의 대나무 장단에 3박자의 고무줄넘기가 연상되는 "뱀부 댄스"도 즐겼다.
문화는 달라도 놀이와 음식에서 동양의 동질성을 실감한다.
방갈로 벤치에서 싱가포르에서 온 동행들과 가벼운 인사말을 나눴다.
한국에 대해 제법 아는 체를 한다.
불고기가 어떻고 호텔롯데가 어떻고...
러시아인 저널리스트도 함께 했다.
그렇게 이방인과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나를 만났다.
빌딩 숲에서 오히려 작아져만 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헛헛한 웃음을 흘렸다.
아, 이래서 사람은 떠나봐야 하나보다.
낯선 사람과 만나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자아를 발견해 가는 작업,이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자, 떠나자.
빡빡한 일상을 박차고.
이왕이면 두리안의 향이 유혹하는 적도의 나라 말레이시아로.
서울을 향하는 기내에서 듣는 "주마까세"(감사합니다)가 새삼 정겹게 들린다.
조호바루(말레이시아)=이은주 기자 ju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