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창 < 서울지방중소기업청장KC4304@smba.go.kr > 원주 치악산 입구에서 구룡사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참 한적한 민박집이 하나 나타난다. 나무로 지은 이 움막집의 이름은 산채원이다. 이 집 주인은 3대째 이곳에서 산다. 이 집 마당을 내려서면 산 벚나무 밑 작은 연못에 송사리떼가 뛰어논다. 가까이 다가가자 큰놈들은 돌 밑으로 숨어버리고 새끼들만 무리지어 논다. 마당 저쪽에 있는 개는 손님을 보고도 저하고는 상관없는 양 네 다리 펴고 이리저리 뒹군다. 그 사이 주인이 닭백숙을 가져왔다. 산 속에서 담근 술이 있느냐고 물었다. 산더덕주 머루다래주 대추주 등 다 있지만 산수유로 만든 술이 간에 좋다면서 권한다. 산채비빔밥에 곁들여 마당에서 키운 상추 고추 오이를 주는데 그 맛이 싱그럽기만 하다. 이 산중에 사는 것이 행복해 보여 서울생활과 바꿔 살아 볼 생각이 없느냐고 주인에게 물었다. 그는 그냥 웃기만 한다. 산중에서 세상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바로 산마루에 떠도는 무심한 구름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낮잠을 자고 나니 어느덧 해질녘이다. 이렇게 조용한 산 속이지만 치악엔 참 많은 흥망이 숨겨져 있다. 신라시대엔 의상대사가 청룡 아홉 마리를 쫓아내고 연못 위에 절을 세웠다. 이 절이 바로 구룡사다. 1335년 전의 일이다. 고려 말 운곡 원천석은 나라가 망하자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주초로다'라는 시를 남기고 치악산에 숨어 살았다. 묘하게도 그로부터 얼마 뒤 고려를 패망시킨 사람 중 하나인 이방원이 또 이곳을 찾는다. 그는 스승을 찾아 치악으로 왔다. 훗날 조선 3대 임금이 된 태종은 치악에서 그 스승이 대궐을 찾아오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스승을 맞이했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자 이를 한탄하는 이도 이곳을 찾았고 새 나라를 세우겠다는 의지로 가득찼던 사람도 이곳을 찾아왔다. 이들은 왜 치악을 찾아왔을까. 치악엔 우리가 미처 알아내지 못한 기(氣)가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기를 느껴 보기 위해 오늘도 치악을 찾았다. 그러나 기를 충분히 담지도 못했는데 벌써 개울물 흐르는 소리 사이로 새벽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