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진(晉)나라에는 도둑이 많았다.임금이 도둑을 근절할 결심을 하고 포도관(捕盜官)을 찾았다. 급기야 극옹(隙雍)이란 사람을 발굴하게 됐는데,그는 얼굴만 봐도 도둑을 알아내는 기막힌 재주가 있었다.임금이 크게 기뻐해 현사(賢士)인 조문자(趙文子)에게 자랑했다. "이제 극옹을 얻었으니 나라안 도둑은 다 근절시킬 수 있게 됐네.다른 것은 필요도 없을 것이야" 조문자는 그러나 딴 말을 했다. "극옹 한사람 때문에 도둑이 근절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필경 극옹도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입니다" 극옹이 활동을 시작하자 도둑들은 "이놈 때문에 우리가 못살게 됐다,이놈을 없애버리자"고 모의했다. 극옹은 곧 도둑의 꼬임에 빠져 살해됐고,임금은 놀라서 조문자를 다시 찾았다. "경의 말대로 극옹이 죽고 말았으니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임금께서 도둑을 없애려거든 어진 사람을 등용해 정치를 맡겨 위로부터 아래로 교화(敎化)가 미치도록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백성들이 염치를 알게 되면 스스로 도둑질을 하지 않게 되지요" 임금이 깨닫고 어진 사람을 등용해 정치를 바로 하자 과연 도둑들은 모두 이웃 진(秦)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지난 달 정부는 '부패와의 대전쟁'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재작년 8·15 때 대통령이 '반부패 특별위원회'를 두고 부패를 근절하겠다고 공언한바 있었는데,2년이 지난 지금 다시 거창한 공약을 외치고 나선 것이다. 여하간 이 사회 부패의 심각성을 잊지 않고 그 척결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정부에 격려의 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런데 망망대해 같이 늘어퍼진 부패의 자락을 어떤 방도로 휘어잡겠다는 것인지 정부가 의도하는 바를 모르겠다. 설마 지난번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본 부패방지법을(실은 '내부고발자 보호법'이라 해야 할 것이지만) 만능의 신약(神藥)으로 믿는 것은 아니리라.우리가 언제 법이 없어서 부패를 몰아내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부패를 지름길로 근절하는 방도란 있을 수 없다.교활한 도적 하나는 백명의 포도도 감당 못한다는데 하물며 우리는 아늑한 온상에서 부패를 번식시키고 있다. 오물의 원천은 남겨둔 채 도랑치는 일은 도로(徒勞)에 불과할 뿐이며,그 많은 부정부패자가 하루아침에 일망타진되는 일도 있을 수 없다.부패는 사회전체가 투명해지고,대통령 이하 노점상까지 모두에게 법질서 준수의식이 설 때 그 번식의 토양을 잃고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다. 정부가 부패를 진정으로 없애려거든 '위로부터 아래로 교화가 미치도록'함이 늦어 보이지만 가장 빠른 길이다. 치자(治者)의 도덕성이 결여된 공권력은 권위를 세울 수 없다. 도입된 제도나 계획은 모두 그 저의(底意)가 추궁되고,온갖 잡범들에게 공권력에 대항하며 의인(義人)행세를 할 구실을 주게 된다. 일제시대에는 왜경에게 잡힌 자를 모두 독립투사라 칭했고,군사독재하에서 해직된 자는 전부 민주투사로 행세했다. 작금 탈세의혹에 도전하는 일부 신문기업의 행태가 어디에 연유하는가를 정부는 돌아볼 일이다. 현 정권은 자민련과 공동정부를 운영하면서 장관을 비롯한 고위직을 협상으로 나눈 사례가 빈번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등용된 공직·준공직자중 부적격 범법 탈세 수뢰 아부 연고 등의 의혹이 끊임없이 일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다른 한편 국회는 이번에도 아랫것들을 제재할 부패방지법은 되지만 윗분들에게 누가 될 자금세탁법은 안된다고 했다.이런 정부가 추진하는 부패척결사업이라면 국민의 신뢰도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임은 말할나위 없다. 여하간 우리사회에서 부패척결사업은 시작돼야 한다. 정부가 선택한 일은 바른 일이지만 그 방법도 바르게 선택되지 않으면 안된다. 또다시 치적홍보에만 관심을 두는 일과성 행사가 된다면 이것은 백성을 배신 조롱하는 일이 돼 없는 일만 못하게 된다. 다음 정권까지 이어지는 백년의 사업을 시작한다는 의지를 갖고,'단호하게,윗물부터 정화시키며' 추진해야 한다. 조급한 개혁의 사례를 많이 남긴 국민의 정부이지만 남은 기간중 백년부패척결 위업의 진실한 초석을 놓기를 기대한다.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