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하드웨어 업계의 가격인하 경쟁은 예전과는 달리 매출신장으로 직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992년 6월. PC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던 이 때 컴팩은 PC가격을 50% 내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는 컴팩을 세계 최대의 PC업체로 우뚝 서게 한 발판이 됐다. 이듬해 이 회사는 72억달러의 매출에 6억1천6백만달러의 순익을 올렸다. 1990년 컴팩의 매출과 순익은 36억달러와 6억4천1백만달러에 달했었다. 순익은 줄었지만 매출이 급증하는 효과는 얻을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이제는 가격을 떨어뜨려도 매출신장마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세계적으로 IT 하드웨어의 수요가 급감한데다 시장 자체가 성숙기에 접어든 탓이다. 데이터퀘스트의 애널리스트인 마틴 레이놀즈는 "PC 가격을 내리면 사람들이 더 많이 구매하던 시절이 있었다"며 "지금은 어떤 가격에도 구매자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가격인하가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악순환만 되풀이한다는 얘기다. 가격인하 탓에 더욱 줄어든 이익으로 버틸 수 있는 생존전략이 요구되는 것이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