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정보기술) 하드웨어 중에서도 특히 가격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분야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다. 중하귄 업체들의 퇴출은 이제 시간문제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세계 1위의 D램 생산업체인 삼성전자는 지난 20일 IR(기업설명회)에서 연말까지 1백28메가D램과 2백56메가D램의 "비트크로스"가 일어나도록 하겠다고 전격 발표,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이 가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비트크로스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반도체의 비트당 가격이 역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2백56메가 D램의 가격을 1백28메가 D램 두개를 합친 것보다 싸게 하겠다는 얘기다. 2백56메가 D램의 원가를 낮춰 반도체의 세대교체를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현재 2백56메가 D램의 가격은 개당 5달러 선으로 1백28메가 D램(1.7달러 선)의 3배 수준이다. 내심 감산을 예상했던 후발업체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물론 마이크론 등 경쟁업체들에도 D램 가격의 추가 인하를 용인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감산을 통한 공급 조절과 이를 통한 업계 전체의 공생보다는 원가경쟁력 우위에 바탕을 둔 강력한 가격선도전략(Cost Leadership Strategy)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D램 시장의 침체를 업계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아 후발업체를 경쟁대열에서 완전히 탈락시킴으로써 향후 가격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충분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가 이렇듯 강공을 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최고의 원가경쟁력과 넉넉한 자금. "과거 10년간 D램 가격의 하락률은 연평균 31.5%에 이르지만 '삼성전자의 평균 원가절감률은 이를 상회하는 34%에 이른다"(김일웅 반도체마케팅담당 상무)는 점을 삼성은 강조한다. 올들어 마이크론 등 경쟁업체가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는 와중에서도 삼성전자는 상반기에만 1조8천억원이 넘는 순익을 남겼다. 삼성전자의 이러한 D램 1위 고수전략에 따라 2∼5위 업체들도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이닉스반도체는 현재 64메가를 생산하고 있는 미국 유진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2백56메가 D램 설비로 전환키로 했다. 현재 8% 수준인 2백56메가 D램 생산비중을 연말까지 2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독일 인피니온과 일본 NEC-히타치 합작사인 엘피다메모리도 내년 신규가동할 공장의 생산라인을 2백56메가 D램 제품위주로 바꾸기로 했다. NEC는 3월말 현재 월 1백80만개에 달하는 64메가D램 생산량을 단계적으로 줄여 내년 3월말에는 완전히 손을 뗀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1백28메가D램의 생산량도 30% 감축하고 대신 2백56메가 D램 제품으로 전환시켜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들 업체는 상당 기간의 출혈경쟁을 각오, 이미 '실탄'까지 확보했다.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 상반기 12억5천만달러에 이르는 해외주식예탁증서(GDR)를 발행, 운영자금 압박에서 일단 벗어났다. 마이크론도 최근 5억달러의 보증사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했고 인피니온도 신주발행을 통해 11억달러의 자금을 마련했다. 문제는 6위권밖의 후발업체들. 이중에서 앞으로 D램 경쟁에서 영원히 탈락하는 업체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지난 97년 극심한 D램 침체기를 겪으면서 모토로라와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이 D램 사업을 포기한 전례가 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D램분야 상위 5개 업체들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78%에서 올해는 85%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고비는 재고물량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D램 업체들이 현금마련을 위해 덤핑에 가까운 가격에 D램을 방출할 가능성이 높은 4.4분기가 될 전망이다. 김성택.이심기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