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패망 '秘史'] (4) '묘수냐...악수냐 (上)'..'통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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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지난주 운명의 99년7월19일을 지나왔다.
시간의 순서대로라면 곧바로 워크아웃이 결정된 8월25일로 내달려가야 한다.
그러나 전사(前史)를 모르고는 페이지를 쉬이 넘길 수 없다.
누가 대우그룹 해체를 결정했는지 대우그룹과 김대중 대통령의 관계는 어떠했는지를 논하기에도 약간의 워밍업이 필요하다.
과도한 부채경영 때문이라고만 말해지는 대우몰락의 시간표가 어떻게 채워져 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시계를 약간 뒤로 돌릴 필요가 있다.
김우중 회장이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관료들에게 점차 포위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을 몇회에 걸쳐 기록한다.
오늘 우리의 무대는 기억에도 선명한 IMF 직후의 혼란기다.
새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로 술렁였던 시기이기도 했다.
재벌과 정부의 대립은 아직은 탐색 수준에 머물렀다.
98년 1월.
신문들은 연일 IMF와의 외채협상으로 지면을 도배질해댔다.
날씨보다 더 매서운 위기감이 한국인들의 뼈를 파고들었다.
관악산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IMF 실업자들이 줄을 지었다.
관악산에서 하루를 보내는 '외로운 IMF 산행'들이었다.
24일 수요일.
영하 20도를 기록한 추위 속에 김우중 회장이 김대중 당선자를 만나기 위해 삼청동의 대통령직인수위 사무실에 들어섰다.
누런 서류봉투를 들고 나타난 김 회장이 기자들에게 목격됐다.
봉투에는 김 회장이 DJ에게 보고할 몇가지 중요한 항목들이 메모식으로 담겨 있었다.
김 회장으로서는 회심의 담판이었고 당선자로서도 우군중의 우군을 재회하는 터였다.
당선자는 김 회장을 매우 좋아했다.
이런 저런 재정적 도움을 주기도 했다는 것이 대우사람들의 주장이다.
어떻든 김영삼 대통령 시절 비리혐의로 재판정에까지 들락거렸던 김 회장으로선 새 대통령과의 신선한 출발을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랬다.
김 회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승부수를 띄웠고 반드시 전리품을 챙겼다.
92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의 정치적 곡예는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의원과의 관계나 이를 미끼로한 김영삼 후보와의 유성호텔 담판은 그의 배포가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결국에는 '대통령 YS의 격노'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언제나 그의 베팅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당선자와의 대화는 두가지 포인트였다.
하나는 GM과의 합작건이었다.
다른 하나는 놀랍게도 무역흑자 5백억달러론이었다.
면담내용을 설명한 박지원 당선자 대변인은 "김 회장은 아주 통이 큰 사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당선자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꿰뚫어 본 사람이 바로 김 회장이었다.
DJ로선 바닥난 곳간(외환보유고)을 채우는 것이 지상과제였다.
김 회장은 바로 이것을 당선자에게 안겼다.
"올해 적어도 3백억달러, 많으면 5백억달러까지 무역흑자를 낼 수 있습니다. 불요불급한 정부 예산은 삭감하고 무기도입을 일시 중단합니다. 대규모 SOC 공사를 연기하면서 수입을 줄이고 대신 수출총력 체제로 가져가면 안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김 회장은 달변을 이어갔다.
당시 정부의 공식적인 흑자목표액은 20억달러였다.
'20 대 5백', 즉 25배의 차이였다.
당선자의 눈이 빛났다.
IMF 극복의 희망이 보인 것이다.
김 회장의 '5백억달러 흑자론'은 1월 중순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대우 임원세미나에서 처음 등장했다.
대우 구조조정본부의 김윤식 부사장은 "5백억달러 흑자론은 전적으로 김 회장의 아이디어였다"고 회고했다.
2개월여가 흐르면서 김 회장의 아이디어는 구체화됐다.
전경련 차기회장으로 내정된 김 회장은 3월13일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을 전경련 회장실로 불렀다.
"5백억달러 흑자달성 방안을 만들어 주시오"
다음은 좌 원장의 회고.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나부터가 반신반의였다. 다만 성장 잠재력을 유지하면서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는 김 회장의 취지에 공감해 연구원들에게 실무작업을 지시했다"
다음날 김 회장은 과천청사를 방문했다.
이규성 재경부장관을 만나 재계가 앞장설테니 정부는 무역금융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경제관료들과의 갈등이 서서히 무르익어갔다.
관료들은 당선자와는 달랐다.
"재벌이 부채비율을 낮출 생각은 않고 외상수출로 장난을 치려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3월27일 대통령이 주재하는 무역투자진흥 대책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범정부차원의 수출드라이브 회의는 지난 87년 무역진흥회의 이래 12년만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한국경제연구원이 살을 붙인 5백억달러 흑자론을 DJ 앞에서 설명했다.
"작년보다 수출을 17% 늘리고 수입을 23% 줄여 무역수지 5백24억달러, 경상수지 5백10억달러 흑자를 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무역금융을 풀어주고 기업 정부 민간의痔纛憫?노력이 따라 줘야 합니다"
당시 참석자들은 DJ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고 기억한다.
경제장관들은 대통령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
그럴 만도 했다.
정부가 잡은 무역흑자 목표치가 처음엔 20억달러(1월2일)였다.
이 정도만 해도 97년 84억달러 적자에서 1백억달러나 개선된다는 설명이었다.
정부와 IMF의 정책협의 때도 무역 흑자를 '30억달러'로 봤다.
그러나 무역흑자가 1월 15억달러, 2월 33억달러에 달하자 경제관료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DJ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인 3월19일 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은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흑자목표를 2백50억달러로 늘려 보고했다.
불과 석달도 안돼 무역흑자 목표가 12.5배로 늘어난 것이다.
김 회장은 처음부터 5백억달러를 주장했다.
이제 김 회장과 경제관료 간에 틈새가 벌어졌다.
5백억달러 흑자론은 대우의 생존전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강봉균 경제수석 등 경제관료들의 생각이었다.
4월 들어서도 김우중 회장은 대통령에게 직보해야 한다며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강봉균 수석은 박태영 산자부장관에게 미뤘고 박 장관은 다시 최홍건 산자부차관에게 떠넘겼다.
최 차관은 4월18일 담당국장들과 함께 힐튼호텔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은 "외환보유고에서 50억달러만 풀어 무역금융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배석했던 산자부 모 국장은 "호텔에 TV카메라까지 대기해 있어 '쇼'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최근 회고했다.
[ 특별취재팀 : 정규재 경제부장(팀장) 오형규 이익원 최명수 조일훈 김용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