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패망 '秘史'] (4) 김우중회장 'KO승'..98년 누가 옳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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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관료들과 김우중 회장이 뜨거운 논쟁을 벌였던 1998년이 저물면서 무역수지가 4백억달러를 넘느냐를 놓고 관심이 집중됐다.
결국 깜짝 놀랄 수치가 나왔다.
97년 84억달러 적자에서 3백99억달러 흑자로 돌변한 것.
80년대말 3저호황이래 9년만에 흑자였고 단군이래 최대 규모였다.
그해 일본(1천2백18억달러) 독일(7백16억달러) 중국(4백36억달러)에 이어 세계 4위였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 중에 한국이 가장 우수한 성적표를 낸 것이다.
대규모 무역흑자 덕에 97년말 외환위기때 38억달러까지 바닥났던 외환보유고는 1년뒤인 98년말 4백85억달러로 급증했다.
대규모 무역흑자로 대부분 쾌재를 부른 반면 당황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98년 벽두에 그해 무역흑자를 20억달러로 잡았던 산업자원부는 누구보다 곤혹스러웠다.
산자부는 2월4일 인수위 보고때 1백억달러로 늘렸고 3월19일 청와대 보고땐 2백50억달러로 높였다.
그러나 실제 흑자규모는 목표치의 1.5배에 달했다.
산자부는 무역흑자 증가세가 예상을 뛰어넘자 98년 막판엔 흑자목표를 4백억달러 이상으로 높여잡고 수출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당시 전경련 상무였던 유한수씨는 99년 1월8일자 한국경제신문 다산칼럼에서 "98년초만 해도 정부나 IMF는 무역흑자를 20억달러 정도로 예견했다가 수차례 수정전망을 한 끝에 4백억달러 흑자로 낙착됐다.
반면에 과학적 분석을 하지 않은 한 대기업 총수는 환율과 흑자규모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썼다.
바로 그 총수가 김 회장이었다.
그러나 통관기준 무역흑자는 잠정집계치보다 9억달러 적은 3백90억달러로 최종 확정됐다.
수출실적이 그 만큼 부풀려 집계된 탓이었다.
바로 9억달러의 차이에 한국 수출의 현주소가 담겨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미국 등의 창고에 팔리지도 않은 물건이 산처럼 쌓여갔다.
9억달러의 오차는 예년에 비해 너무 컸다.
97년엔 수출 확정치가 오히려 4억6천만달러 많았고 95,96년엔 오차가 1억∼2억달러에 불과했다.
그 빌미는 물론 대우가 제공했다.
대우자동차가 수출신고를 해놓고 취하한 금액이 5억달러에 달했다.
포철 등 철강업체에서 1억달러가 취소됐다.
산자부 관계자는 "전경련 회장이기도 한 김우중 회장이 수출과 무역흑자 확대를 위해 드라이브를 걸다 무리수가 나온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오형규 기자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