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기 <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honglaw@unitel.co.kr > 우리나라에서는 법정영화가 안 된다고들 한다.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수입해도 관객이 들지 않고 국내에서 법정영화를 제작하기도 만만찮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성공한 영화가 국내에서 반응이 좋지 않은 이유는 문화 차이로 설명할 수 있겠다. 조금만 불쾌한 일이 있어도 '소송하겠다'고 덤벼들고 사소한 계약서 작성 때도 변호사를 찾아가는 그 사회는 법과 친밀한 사회다. 당연히 잘 만든 법정영화에는 관객이 몰릴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법정영화 만들기가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소송구조의 차이(배심제의 부재) 탓이다. 재판에 참여하는 직업법률가들끼리는 조용히 할 말만 해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법률 문외한인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한 변호사의 연기가 전혀 필요없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변론보다 서면공방(書面攻防) 중심으로 이뤄지는 우리 민사법정에서 일반인은 도대체 변호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조차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씩 힘겹게 제작되는 우리 법정영화에서 국적이 애매한 장면을 만날 때는 일순 착잡해진다. 유사 이래 우리 법정에서 사용한 적이 없다는 봉(棒)이 등장하는 것은 다반사가 돼 버렸고 둔탁한 봉소리를 효과음으로 해 법정을 클로즈업하는 픽션이 연출되기도 한다. 민사소송의 '피고'와 형사 절차의 '피고인'이 현저히 다른 개념임에도 같은 것인 양 혼용되고 있는 점은 애교로 봐 주더라도 재판장과 검사,변호인의 기본 역할마저 이해하지 못하고 카메라를 들이댈 때는 참기가 힘들어진다. 이러한 대부분의 오류는 약간의 성의있는 취재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기에 짜증스럽다. 막연히 미국 영화를 흉내내며 '한국' 법정영화를 만들다보니 미국 법정에 있는 봉도 가져와야 하고 용어에도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영어에서는 '피고'와 '피고인'이 모두 defendant). 우리가 미국에서 가져와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식계층의 '성실함'과 '철저함'이다. 대충 남의 나라 비디오를 보면서 우리 이야기를 엮어 내겠다는 덤벙댐으로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