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 칼럼] 미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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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정답은 '구제역(口蹄疫)을 양재역 다음 역이라고 우기는 사람' '안동수(安東洙)씨를 안동출신이라고 우기는 사람' 등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우기는 사람들'이다.
물론 누군가 만들어낸 숱한 우스갯소리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주위를 되돌아보면 정말 오늘의 우리 사회가 남의 말은 듣지않고 제목소리만 내는 사람들,우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에게 끌려가는 듯한 측면이 두드러지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장(場)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는 이미 오래고,그래서 여야가 제각각 장외집회를 갖고 상대방을 공격하는데 여념이 없다.
지식인사회도 첨예한 대립이 두드러지기는 마찬가지다.
토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원색적이고 증오어린 용어가 난무하는 양상이다.
왜 이런 꼴이 됐을까.
한마디로 사회의 근본질서에 뭔가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정부의 개혁조치가 목표와 명분을 내세워 법적 절차에 있어서 합법성과 정당성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음을 우려한다'는 대한변협 주최 변호사대회 결의문은 뭔가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
법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규범이고 보면 어떠한 명분이나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이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것 또한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체포영장이 발부된 민노총 지도부의 행태만 봐도 '법치의 현주소'는 문제가 있다는게 자명해진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과 지금은 법에 대한 관념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도덕성과 정통성에서 문제가 없지않았던 시절의 사전영장이나 강제연행과 지금의 체포영장은 명백히 다르다.
노동운동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은 국민의 정부,도덕성과 정통성을 확보한 민주화된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더욱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상 당연히 관계당국에 자진출두 조사를 받는 것이 당사자들의 도리고,또 그들이 어느 곳에 있건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이다.
어떤 연유에서든 법과 공권력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그 근본적인 책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부에 있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정부는 지금까지의 법집행과 정책운용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자세가 긴요하다.
왜 법치주의가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오게 됐는가.
그것은 경제가 이처럼 어려워지게 된 원인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명분에 경도돼있고 또 인기영합적인 정책운용이 법치의 후퇴라는 평가를 받게된 근본적인 원인이다.
YS정권때부터 관성화된 일이기는 하지만 주요 경제정책이 법적 뒷받침없이 행정력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것은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관련 정책들이다.
현정권 초기에 이루어진 이른바 빅딜이 겉으로는 대기업그룹간 자율적 합의형식이었지만 실제로는 법적 뒷받침도 없는 행정력에 의한 강요였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부채비율 2백% 이내 축소 등도 따지고보면 마찬가지다.
IMF아래서 기업및 금융구조조정을 현실적으로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는 일면이 있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부인하기 어려운게 사실이지만,법률이나 제도보다는 행정부의 자의(恣意)적 판단이 지나치게 작용한 측면이 너무 두드러졌던 것 역시 분명하다.
당사자가 누구냐에 따라 제도와 행정의 제재 잣대와 강도가 달랐다는 점 또한 법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총선 때의 일부 시민단체 낙선운동을 비롯 이기주의적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관할 정도로 관대했던 반면 대기업정책은 대조적이었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인식이기도 하다.
사회적 기본권의 보장,적정한 소득의 분배 등 경제정의는 우리가 지향해야할 목표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만을 북돋운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 것 또한 명백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제정의의 실천은 변협이 지적한 것처럼 법치를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개혁이라는 명분에 경도돼 기업부담능력을 웃도는 졸속한 제도를 강요해서도 될 일이 아니다.
/본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