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閑談] (2) '서암(前조계종 종정)'..천하에 쉬운것이 바른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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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 처박혀 사는 늙은이한테 뭐 들을 게 있다고 찾아 오셨소.귀가 어두워 세상 소리를 못들으니 내 소리(말)도 할 자격이 없는데."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선달산 자락의 무위정사(無爲精舍).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암 스님(87)의 수행처다.
불청객을 맞은 노장은 "괜한 걸음을 했다"며 "기왕 왔으니 세상 얘기나 들려주고 가라"며 방석을 내놓았다.
무위정사는 물야면에서 오전약수 쪽으로 가는 도중 한창 공사 중인 오전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서있다.
건물이라야 본채와 해우소(解憂所·화장실)뿐 그나마 가건물이다.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는 선사의 삶,그대로다.
-이곳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무위정사라고 한 뜻은 무엇인가요.
"4∼5년 됐지요.
중으로서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산다는 뜻에서 무위정사라고 지었어요.
이해관계에 얽힌 세상의 모든 것이 유위법인데 비해 무위는 세상법과 다른 불교의 법,인간생명의 근본을 알고 사는 도리를 말합니다"
-산 중에서 세상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산중 늙은이가 뭘 알겠어요.
세상 얘기나 좀 들려달라니까….
다만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텐데 국가 지도층에서 크게 잘못하고 있어요.
해마다 수해가 나서 국민들이 전전긍긍하는 걸 보세요.
어쩌다 실수하는 것도 아니고 매년 똑같은 피해가 반복되니 참 답답한 일입니다.
정치인들이 서로 싸움만 하지 실제로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데는 제로(0)예요"
-왜 그럴까요.
"원래 바른 이치는 행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를 거스르자니 어렵지요.
본래 자기 마음은 항상 밝은데 파당에 얽히고 욕망에 치우쳐 마음에 혼란이 생기는 겁니다"
-'걸림없이 산다'고 말은 쉽게 하면서도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천하에 쉬운 게 바른 이치입니다.
그러나 욕망에 가리고 자기 이익만 좇는 잘못된 마음자세가 굳어져 걸림없이 살기가 어렵게 되지요.
욕망을 털어버리면 모든 게 환해집니다.
양심이 가리키는 대로 살면 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참선에 관심을 갖거나 실제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습니다.
선의 참뜻은 무엇입니까.
"참선이란 마음을 반듯하게 갖고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흐트림 없이 가다듬어 가는 것이죠.
선이라고 해서 별스런 물건이 아닙니다.
올바른 마음으로 노력하고 결과를 기다릴 뿐 다른 비법은 없어요"
-지난 94년 봉암사를 떠난 이래 처음으로 이번 하안거 결제 때 봉암사에 가서 법문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제 90 늙은이가 뭐 할 말이 있겠어요.
더구나 종단을 떠난 사람이….
다만 공부하는 사람들이 불교얘기를 듣겠다고 해서 두 번 갔다 왔지요.
불교는 아무런 장벽도 국경도 없어요.
그래서 불교 이야기를 해달라면 미국도 가고 교회에도 갑니다"
-불교가 뭡니까.
"깨닫고 바로 살라는 소리입니다.
자기자신이 만유를 창조하고 주재하는 핵심이지 부처가 따로 없어요.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存)이라고 한 겁니다.
천당도 지옥도 자기가 만드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보고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아야 합니다.
석가모니의 그림자만 따라가면 석가모니의 노예가 됩니다.
부처님의 8만4천 법문의 뜻이 모두 유아독존에 있습니다"
-바르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단 한순간을 살아도 인간답게 살아야지요.
그러자면 정신이 중요합니다.
나고 죽는 것은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아서 육체는 몇 천번을 바꿔 나도 정신은 영원합니다.
특히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고 평화스럽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해요.
옆 사람이야 죽든 살든 혼자만 잘 살려는 것은 금수세상이지 인간세상이 아닙니다"
서암 스님은 "한적한 곳에 사셔서 좋겠다"는 말에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고 했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조용한 곳에 있어도 조용하지 않고,마음이 안정돼있으면 번잡한 곳에서도 어지럽지 않다는 것이다.
1914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17세 때 예천 서악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한 서암 스님은 해방 전까지 금강산에서 수행했다.
해방 후엔 철원 심원사,상주 원적사 등 여러 선방을 거쳐 수행가풍이 엄격하기로 이름난 문경 봉암사에서 선풍을 이끌었다.
조계종 총무원장,원로회의 의장,봉암사 조실을 거쳐 종정까지 지낸 것도 이런 바탕에서다.
지난 94년 조계종 분규와 관련,탈종 선언과 함께 봉암사를 떠난 뒤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하다 무위정사에 걸망을 풀었다.
봉화=서화동 기자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