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베이징(北京) 월드차이나호텔 1층 대회의실. 무대를 어지럽게 수놓는 레이저빔과 강렬한 음악, 젊은이들의 율동 등이 어우러진 한 이벤트가 열렸다. 어두운 무대가 점점 밝아오면서 검정색 차림의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무시무시한 사건이 발생할 듯한 분위기... 강렬한 음악이 터져 나오더니 무사들을 비집고 대형 TV 한대가 나타난다. "LG" 마크가 선명한 벽걸이TV(PDP TV)였다. LG가 벽걸이TV의 중국 판매를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LG는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공장에 벽걸이TV 생산라인을 구축, 제품을 뽑아내고 있다. 현재 생산되는 40인치 외에 42,60인치 라인도 곧 가동된다. 구미공장에 이어 두번째다. 최고급 고가TV를 중국에서 생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은 최고기술, 최고 서비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기술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입니다. 최고 제품으로 승부를 걸자는게 벽걸이TV 판매 이유입니다. 구매력 수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오히려 잘 팔릴 것입니다" LG 중국법인 노용악 부회장의 답변이다. 톈진(天津)공업단지에 위치한 삼성SDI. 이 공장에서 최근 34인치 평면 TV브라운관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본사는 34인치 평면TV브라운관을 개발, 생산을 톈진공장에 맡겼다. 톈진공장 제품은 중국 및 세계 전역에 뿌려진다. "중국 직원은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제품으로 만들어내는데 손색이 없습니다. 그들은 꾀부릴 줄 모르고 가르쳐준 데로 일합니다. 6시그마운동을 잘 소화하지요. 평균 40만원의 월급으로 이처럼 생산성이 뛰어난 노동력은 다른 곳에서 구하기 힘들 겁니다"(이중현 삼성SDI 톈진법인장) 이 두 회사의 중국비즈니스 공통분모는 기술이다. 기술력이 있었기에 13억명의 황금시장에 도전할 수 있었고, '세계공장' 중국에서 생산이 가능했다. 현대전자 베이징지점 허철 상무는 "기술적 우위를 지키지 못한다면 21세기 중국시장은 남의 떡일 뿐"이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중국시장 진출을 우리나라 산업 고도화 전략과 연계시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물산 베이징지점 김재경 부장은 "중국이 세계 공장이라면 한국은 거대한 연구개발(R&D)센터가 돼야 한다"며 "이제 중국을 고려하지 않는 경영전략은 성립할 수조차 없다"고 강조했다. 요즘 중국진출 국내 기업에서 발견되는 뚜렷한 특징은 현지화다. SK그룹은 최근 중국에 정보기술 법인을 세우며 최고경영자(CEO)를 중국인으로 선임했다. 그에게 회사경영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줬다. 철저히 중국기업이 되자는 전략이다. "유능한 중국 인재를 채용해 그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 중국시장 침투력을 높이자는 취지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중국시장의 아웃사이더가 될 수 없습니다" SK 중국법인 김상국 상무의 설명이다. 작년 중국에 철강을 1백60만t 수출했던 포항제철은 중국의 주요 석탄수입 업체이기도 하다. 작년 4백50만t, 올해도 5백만t 정도를 들여올 계획이다. 김동진 상무는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중국에 줄 것은 과감하게 주어야 한다"며 "이제 우리는 이웃에 등장한 강대국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짜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중국경제는 앞으로 3∼4년 엄청난 격변기를 겪을 것입니다. 이 변혁에서 소외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중국시장에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멕시코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옆에 두고도 경제난에 허덕이는 이유는 체계적인 '미국 전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최소한 향후 3∼4년을 겨냥한 국가적 차원의 대(對)중국 전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난 92년 한.중 수교 후 줄곧 중국에 주재한 '제1세대 중국 통'인 포철 김 상무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