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0.50원 급락, 11일만에 1,200원대 복귀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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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급락세였다. 열 하루만에 1,200원대로 마감한 환율은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달러약세권에 편입된 셈이었다.
역외세력은 전 세계적인 달러 강세에 대한 불신감을 배경으로 매도에 적극 나서 시장 분위기를 갈아엎었다. 최근 시장에 남아있던 달러매수 심리는 단숨에 무릎을 꿇었다.
향후 방향이 시계제로인 상태에서 오름세를 타기엔 매수 세력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고 있다. 27일 환율은 급락의 휴유증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10.50원 내린 1,298.30원에 마감했다. 지난 9일 1,296.40원에 마감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
개장초 달러/엔 환율 하락에 기대 아래쪽으로 미끄러진 환율은 역외매도세, 달러되팔기(롱스탑) 등 물량 공급과 함께 장재식 산업자원부 장관의 발언에 의해 장중 10원이상 폭락하는 장세를 연출했다. 시장참가자들은 손바꿈을 빈번하게 하면서 달러매수초과(롱)포지션을 끊임없이 털어냈다.
장 산자부 장관의 발언 역시 핑계꺼리로 충분히 작용했다. 수출부진과 무역수지 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적정환율 수준 발언에 대해 재경부는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으로 진화에 나섰으나 탄력이 붙은 환율 하락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달러 강세에 대한 불만과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달러 약세 흐름은 27일 미국의 2/4분기 국내총생산(GDP)발표를 앞두고 분명해지고 있다. 시장참가자들의 신중한 판단을 요하는 변수. 뚜렷한 매수세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다소 버거워 보인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최근 이월 물량이 많았던 데다 예상외의 역외매도세 등이 달러되팔기를 자극해 거침없이 밀리는 장세가 연출됐다"며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였으며 당장 방향 잡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밤새 달러/엔의 움직임이 하나의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이나 예상보다 많이 밀린 휴유증이 내일 이어져 큰 폭의 움직임은 자제될 것"이라며 "그러나 시계가 제로인 상태에서 일단 1,294∼1,304원 범위로 넓게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외국계은행의 다른 딜러는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며 "싱가포르 달러 등 대개의 동남아 통화도 강세를 보이고 있고 역외가 다시 매수에 나서지 않는 이상 특별한 매수처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1,290원 초반까지 밀릴 수도 있으며 1,300원은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 달러매도세 득실 = 개장초부터 역외세력의 강력한 매도공세는 시장 분위기를 적극적인 하락 분위기로 유도했다. 전 세계적인 달러 약세의 바람을 타고 역외에서 매도에 나서자 덩달아 국내서도 보유물량을 털어냈다.
지난 월요일 외국인 주식순매도분 1억달러 가량과 결제수요가 꾸준히 따라주었음에도 달러 매도 공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개장초 1,305원에 1차적으로 막힐 것으로 봤던 거래자들은 차례로 1,302원, 1,300원이 뚫리면서 1,297원까지 거침없이 내리닫자 당황한 기색이 완연했다.
장재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이날 명동 은행회관서 열린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어제 1,305원 수준은 너무 높아 개인적으로 1,200∼1,250원대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원화가 달러화에 대해 평가절상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지며 달러되팔기에 자극제를 가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환율은 달러수급과 경제전망에 따라 외환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을 통해 인위적인 환율 조정이 없을 것임을 시사했으나 흘러내리는 환율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달러/엔은 미국 경제회복에 대한 불확실성과 부시 행정부의 강한 달러 정책에 대한 불신감으로 대체로 123.30∼123.50엔 범위를 선회했다. 25일 뉴욕장을 123.62엔에 마감한 바 있는 달러/엔은 이날에도 약세를 이었다.
전날 폴 오닐 미국 재무장관이 달러 강세 정책을 거듭 천명했고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도 "강한 달러 정책을 수정하는 것은 경제에 좋지 않다"고 발언했으나 달러화는 힘을 얻지 못하고 다른 동남아 통화에 대해서도 약세였다.
윌리암 더들리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향후 달러화가 급락하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달러 강세 정책 수정을 권고했고 모건스탠리딘위터의 스테판 젠은 달러화 강세이유의 적정성여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27일 발표될 미국의 2/4분기 GDP가 좋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이에 가세했다.
◆ 환율 움직임 및 기타지표 = 환율은 밤새 역외선물환(NDF)환율이 조용하게 1,308원에 주 거래됐으나 달러/엔의 내림세가 지속된 것을 반영, 전날보다 3.80원 낮은 1,305원에 출발했다.
개장 직후 1,305.90원까지 낙폭을 줄인 환율은 1,305원을 축으로 공방을 벌이다가 달러/엔 하락세, 증시 상승 등 주변여건 호전으로 달러매수초과(롱)상태인 일부 거래자들이 달러되팔기에 나서고 역외매도세까지 가세하자 11시 10분경 1,302.50원까지 낮췄다.
이후 환율은 소폭 되올라 1,303∼1,304원 범위에서 맴돈 끝에 1,303.90원에 오전 거래를 마쳤다.
오전 마감가와 같은 1,303.90원에 거래를 재개한 환율은 개장 직후 한동안 큰 변화가 없다가 역외 매도세가 재연되면서 차례로 레벨을 뚫고 내려 2시 31분경 1,300원까지 저점을 낮췄다.
이후 환율은 달러되사기로 1,301∼1,302원 범위로 소폭 되올라 거래되다가 장재식 산자부 장관의 발언을 핑계로 손절매에 나서 3시 18분경 1,299.70원을 기록해 1,300원대를 깨고 내렸다. 계속적인 매도 공세에 직면한 환율은 4시 3분경 1,297원까지 저점을 낮춘 뒤 1,297∼1,298원선에서 주로 거래되며 마감했다.
전날에 이어 주식 순매수를 이은 국내 증시의 외국인은 거래소에서 451억원의 매수 우위를, 코스닥시장에서 63억원의 매도 우위로 엇갈린 방향으로 거닐었다. 지난 월요일 1,984억원의 순매도분 중 1억달러 이상이 역송금수요로 등장했으나 달러 매도세에 묻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장중 고점은 1,305.90원, 저점은 지난 10일 장중 1,293.50원을 기록한 이래 최저치인 1,298원으로 하루 변동폭은 7.90원에 달했다.
이날 현물 거래량은 서울외국환중개를 통해 24억4,050만달러, 한국자금중개를 통해 13억250만달러를 기록했다. 스왑은 각각 3억9,300만달러, 3억6,480만달러가 거래됐다. 27일 기준환율은 1,302.20으로 고시된다.
한편 이달 들어 25일까지 무역수지는 10억4,400만달러 적자로 나타났다. 올들어 월간 25일 기준으로 처음 무역 적자규모가 두 자리수를 기록했다.
또 이 기간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3% 감소한 82억1,900만달러, 수입은 16.8% 준 92억6,300만달러로 집계됐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