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내달초 한국에 온다. 미국 정부의 밀사가 아니라 무주택자를 위한 집을 짓기 위해 강원도 태백시를 찾는다. 그는 대통령직을 물러난 4년후인 지난 1984년부터 '국제 해비타트' 운동에 동참, 해마다 전세계 무주택자를 위해 직접 못질을 하고있다. 올해는 한국에서 일주일간 6백여명의 국내외 자원봉사자와 함께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벌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원봉사자로 변신, 설계도를 안고 방한하는 그의 이런 행보가 새삼 값지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는 대통령병이 중증 기미를 보이면서 킹메이커가 속출하고 사회가 양분되는 우리 후진적 정치풍토에 대한 혐오의 반증일 것이다. 사실 카터 전 대통령은 집에 서류를 들고 갈 정도로 부지런해 오히려 미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지도자란 애기를 들었다. 그 충격으로 퇴임후 한때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던 그는 그러나 가신들을 앞세워 후임 대통령을 비난하지도 않았고, 킹메이커로 나서지도 않았다. 그 대신 삶의 방향을 가족과 국제봉사로 돌려 지난해는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물론 후임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그의 정책을 비난하기 보다는 외교특사로 기용하는 느그러움을 보였다. '정권을 잡지 못하면 죽는다'는 강박관념 속에 사생결단의 정쟁을 벌여온 우리의 정치문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숨을 죽이고 사태를 지켜보다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면 곧장 '진흙탕' 정쟁으로 빠져드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들어 정치권에 'X'란 욕설이 난무하는 것은 그 단면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여야 총재에게는 그래도 일정한 예의를 갖췄으나, 이제는 '정육점 주인' '속좁은 대권병 환자'란 식의 공격은 예사다. 아전인수격 평가가 난무하면서 벌써부터 대통령 탄핵을 운운하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권병이 날로 깊어지면서 "내가 꾸면 희망이고 네가 꾸면 병"이란 갈등구조가 만연하는 양상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진흙탕 정쟁이 국민들을 편가름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독재와 반독재'의 2분법 시대에는 국민들이 나름대로 판단의 잣대를 가질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잣대가 완전히 가치기준을 잃었다. '개혁과 반개혁' '보수와 진보' '극우와 극좌' 등 이념적 양극논리가 확산되며 국민들은 혼란속에 빠져들고 있다. 정당이 색깔을 갖는 것을 탓하는게 아니라 '집권'이란 탐욕을 위해 정치권이 사회를 대립구조로 몰고가고 있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자민련 그리고 민국당 등 여 3당의 노선이 같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드물다. 보수와 진보가 혼재된 야당내에서도 집권이란 명제 앞에서 반대 목소리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인상이 짙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판 지미 카터를 기대할수는 없는게 분명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후 '당신 인생의 정점을 언제라고 생각하는가'란 미국의 유명 여성앵커인 바바라 월터스의 질문에 "바로 지금이다"고 말했다. 때가 되면 물러날 줄 아는 그의 지혜가 무능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있게 했다는 점을 우리 정치지도자들도 한번쯤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서산을 붉게 물들여야 일몰이 반드시 아름다은 것만은 아닌 것이다. 산업생산성이 32개월만에 감소하는 등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대량실업도 예고돼 무더위에 지친 국민들을 더욱 짜증스럽게 하고 있다. 정치권도 이제 국민의 손가락질을 피하기 위해 '상생'의 시늉만 할 것이 아니라 '남의 꿈을 인정'하는 풍토를 만들어 국민들의 피로를 덜어줘야 한다. < you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