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8월이 온다..정규창 <서울지방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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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창 < 서울지방중소기업청장KC4304@smba.go.kr >
8월은 따가운 햇볕이 오곡백과를 살찌우는 달이다.
가을에 접어드는 입추와 벼가 고개를 숙이는 처서가 8월에 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신선한 바람에 모기와 파리의 극성이 조금 가라앉는다.
대신 8월엔 매미가 나타난다.
8월의 매미는 한여름 폭염만큼이나 뜨겁게 운다.
땅속 생활 6년에 나무숲에서의 한 달이 너무나 짧지만 이를 만끽한다.
매미는 5덕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머리에 반문이 있으니 문(文)이고 이슬을 마시고 사는 것이 청(淸)이며 곡식을 먹지 않는 것은 염(廉)이고 집을 짓지 않는 것이 검(儉)이며 계절을 지키는 것은 신(信)이다.
8월에는 사랑이야기도 있다.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에 떨어져 살고 있는 견우 직녀가 1년에 한번씩 만나는 날인 칠석이 들어있다.
8월의 꽃중에 능소화에도 사랑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구중궁궐의 꽃으로 불리는 능소화는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에 빈이 된 여인이 임금님을 기다리는 상사병에 걸려 죽어서 꽃이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접시꽃도 8월의 꽃이다.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간 아내를 그리워 절규하며 부른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은 8월을 애타게 만든다.
일본의 국사 교과서 왜곡문제로 온 국민이 분노하는 가운데 맞이하는 8월은 역사적 의미가 새롭다.
흙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며 온 겨레가 광복과 독립의 환희속에 얼싸안고 춤을 추던 때가 8월이다.
이상하게도 우리 민족을 일제 식민지 36년의 암흑기로 접어들게 한 한·일합병조약이 공포된 국치일도 바로 8월에 있지 않은가.
1910년 8월22일 한·일합병조약이 조인되던 날 친일파들이 순종황제에게 날인을 강요하자 순정 황후는 치마 속에 옥새를 감추고 내놓지 않다가 숙부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겼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한 후 순종 황제는 왕으로,순정 황후는 왕비로 강등되고 조선왕조는 막을 내리게 된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번 8월엔 매미소리를 들으며 독립기념관에 한번 더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