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민금융이용자보호법과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 중요한 개혁법안을 위헌소지가 있게 만드는 바람에 법 도입 자체가 유보되거나 법안이 유명무실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사채 금리에 상한선을 두기 위해 제정키로 한 '서민금융이용자보호법'은 두달넘게 위헌시비에 휘말린 채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는 지난 6월 국회에서 이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위헌 논란이 일자 법안을 소위 위원회로 넘긴 뒤 방치해두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여신금융회사의 연체 이자율 최고 한도를 법에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에 전적으로 위임한 것은 위헌소지가 있다"는 의견서를 재경부에 전달하는 등 법 논리상의 허점이 도마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재경부가 카드회사의 가두 회원모집을 금지하려고 개정을 추진했던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 역시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가두모집 금지는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지난 1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서도 '채권단의 채권행사 금지' 등 당초 법안의 핵심이랄 수 있는 조항이 모조리 삭제 또는 수정됐다. 채권행사 금지 조항은 주채권은행이 특정 기업의 처리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채권단협의회를 소집하면 소집통보일로부터 1∼3개월동안 모든 채권금융회사의 채권행사를 금지하는 내용.채권금융회사들이 겉으로는 채권단협의회에 참석하면서 경쟁적으로 담보권 실행 등 기업을 와해시킬 수 있는 이중적 행동을 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었다. 채권단협의회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일단 채권행사를 동결시켜야 한다는 취지는 옳은 것이었지만 공권력이 아닌 민간금융회사(주채권은행)가, 그것도 법률적 행위 없이 협의회 소집을 통보하는 행위 하나만으로 다른 채권금융회사의 채권행사를 금지시킬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 행사를 부당하게 침해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밖에 없었다. 이 조항 외에도 '임직원의 면책'이 삭제됐고 채권단 공동관리 돌입 후 새로 제공되는 자금은 회사정리법상의 공익채권, 화의법상의 '우선권있는 채권', 파산법상의 '재단채권'으로 인정한다는 조항도 회사정리법 등의 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빠졌다. 결국 △일부 채권금융회사의 '무임승차'를 막고 △채권단협의회 의결이 속도있게 이행되도록 하며 △필요시 과감한 신규자금 지원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당초 법안 제정의 취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중장기적으로 상속.증여.소득세에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은 아직 입법시도가 없지만 벌써부터 위헌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헌법 제59조(조세의 세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게 법조계 일반의 주장이다. 정부가 의욕만 앞서 문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