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패망 '秘史'] (6) '묘수냐...악수냐 (下)'..어긋난 주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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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장과 경제관료들의 관계가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서로 다른 부류에 속할 뿐이었다.
한쪽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고자 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쪽은 "조건부 합리성"을 추구하는 모범생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국 피할수 없는 충돌로 달려갔다.
판을 더욱 키우려는 김 회장과 그를 포위하려는 고위관료들의 싸움은 98년 1년 내내 계속됐다.
"대우는 부채의 시한폭탄"이라는 인식과 "5백억달러 흑자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다는 생각은 그 뿌리가 너무도 달랐다.
장면 1
98년 1월30일.
세계경제포럼 총회가 열리던 스위스 다보스의 센트럴호텔 로비.아시아 외환위기를 놓고 가는 곳마다 치열한 이론논쟁이 벌어졌다.
뉴욕 외채협상을 타결짓고 스위스로 날아온 유종근 대통령 경제고문(전북지사)이 양수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과 얘기하다 김 회장과 마주쳤다.
김 회장이 경제위기 책임소재를 놓고 먼저 포문을 열었다.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대기업 잘못으로 몰아붙이는데 도대체 기업이 잘못한게 뭡니까. 기업이 아닌 금융이 부실해 외환위기가 생긴 것 아닙니까. 빅딜도 어디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인지 말씀 좀 해보세요"
김 회장은 양수길 원장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이는 유종근 지사에게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유종근 지사는 외채협상을 막 성공적으로 끝낸 터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DJ의 경제고문이었다.
재벌회장이 서슬이 퍼런 권력실세에게 대든 꼴이 되고 말았다.
파장이 커지자 김 회장은 다음날 유 지사를 만나 "양 원장에게 했던 얘기"라며 서둘러 진화했다.
새정부 경제관료들과의 악연은 이렇게 실타래가 꼬이기 시작했다.
장면 2
98년 7월10일.
제2차 무역투자진흥 대책회의가 열린 청와대 대회의실.
박태영 산자부장관이 김 대통령에게 수출지원책을 보고했다.
"오늘부터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자금지원도 잘될 것입니다. 수출보험공사가 보증을 서도록 조치했습니다"
김 회장이 바로 발언 기회를 얻었다.
"경제장관이 아직 수출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조목조목 수출현장의 문제를 설명해 가면서 "관료들이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결론을 유도해갔다.
박 장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김 회장은 다른 회의에서도 "이런 수출대책회의 열면 뭐합니까. 정부 수출대책이 현장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돼요"라며 장.차관 가리지 않고 쏘아붙였다.
장면 3
98년 7월31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조찬간담회.
공정거래위원회가 5대그룹의 부당내부거래에 1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직후였다.
대우그룹도 포천아도니스골프장의 공사비를 제때 받지 않은 것이 적발됐다.
김 회장의 발언은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1백억원이 어디 푼돈입니까. 취약한 자본시장에서 선진국 수준의 부채비율을 강요하는 것부터가 말도 안돼요"
공정위가 발칵 뒤집혔다.
김 회장은 마지못해 전윤철 공정위원장에게 사과전화를 걸어 "언론보도는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장면 4
98년 11월29일 금감위원장 집무실.
대우는 12월7일 청와대 정.재계간담회를 앞두고 구조조정안을 마련중이었다.
노무라보고서 파문이 채 가라앉지 않은데다 해외 금융기관들이 대우 여신회수 강도를 높이던 때였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대우가 가져온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김 회장은 금감위로 오지 않았다.
보고서를 들고 직접 청와대로 갔다.
소식을 들은 이 위원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세상이 변한 줄도 모르고…"
금감위 구조조정 라인은 이날 "할테면 해보라지"라며 전의를 다졌다.
강봉균 경제수석도 사사건건 김 회장과 마찰을 빚었다.
김 회장이 대통령에게 무역금융을 풀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일언지하에 안된다고 선을 그은 것도 그였다.
다음은 강 수석의 회고.
"김 회장이 DJ를 면담할 때는 대부분 배석했어요. 김 회장이 대통령 앞에서 '엉뚱한 소리'를 못하게 막는 것이 주요 업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지금 이 글의 핵심이기도 한 문제의 5백억달러 흑자론과 관련해 김 회장은 대통령 면전에서 경제관료들을 향해 "책상 물림들이 뭘 압니까"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김 회장과 경제관료들은 이렇게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반격
이제 경제관료들이 반격을 가할 차례였다.
더 이상 대우의 확대경영을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부채의 눈덩이가 탄력을 받으며 이미 경사면을 굴러내려오기 시작한 터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관료는 최근 기자에게 "'김우중은 절대 안된다. 가만히 두었다간 구조조정이고 뭐고 다 날아간다'는 인식이 경제관료들 사이에서 이미 굳어졌었다"?회고했다.
다른 관계자도 "대우그룹은 이미 시한폭탄이었다. 충격을 줄이면서 해체하는 방법론만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결국 금감위는 7월22일 CP 발행한도를 규제하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오직 대우그룹만 한도를 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 조치로 대우그룹의 단기자금은 급격하게 파국으로 달려갔다.
더욱이 김 회장은 이런 와중에도 언제나 해외출장중이었다.
10월28일엔 급기야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가 취해졌다.
이번에는 장기 자금 라인이 모두 끊어져 나갔다.
'5백억달러 흑자론'으로 위기를 타고 넘는다는 김 회장의 계획은 경제관료들의 이중 삼중의 포위망 속에서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노무라 보고서가 비상벨을 울린 것은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대우 사람들은 이를 두고 경제관료들의 치밀한 음모였다고 주장하지만 음모를 거론하기에는 대우측의 약점이 너무도 많았고 몇번의 회생 기회들은 또 너무도 쉽게 흘려보냈다.
[ 특별취재팀 : 정규재 경제부장(팀장) 오형규 이익원 최명수 조일훈 김용준 기자 ]
[ 매주 火.木요일자에 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