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경제 체제인가] (1) '위협받는 소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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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과연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인가".
경제계 일각에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의문이다.
국가 권력, 또는 "시민단체"라는 이름의 공공적 개입이 기업자유와 시장경제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경제 활력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다급한 목소리다.
"개혁"과 "구조조정"의 명분 아래 획일적 잣대가 강요되고 사적 소유권이 부분적으로 부정되며, "빗나간 평등주의"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경고도 들린다.
"경제자유 회복"이 왜 절실한지 시리즈로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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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논리를 무시한 개혁 드라이브가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결정적으로 깎아내리고 있다"
최근 핵심 경제부처의 고위 관계자는 정부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이렇게 고백했다.
그가 예로 든 대표적인 병리 현상은 작년 11월 이후 8개월 연속으로 쪼그라들고 있는 기업들의 설비투자.
30대그룹에 대한 출자총액 제한 등 갖가지 규제 장치로 기업들을 얽어맨 결과라는 토로다.
또 다른 핵심부처의 주요 국장도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성장해 30대그룹으로 지정되는 순간 그동안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됐던 25가지 규제를 새로 받아야 한다"며 "이런 규제 드라이브가 기업과 경영자들을 철저하게 좌절로 이끌어 왔다"고 지적했다.
고위 공무원들이 실토할 정도로 우리 경제는 지금 '개혁 규제 증후군'에 신음하고 있다.
정부가 8월말까지 2단계 규제개혁을 단행하겠다고 했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게 경제 현장의 증언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시장 경제의 본령에 속하는 기업 소유권과 경영권에 대한 통제가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는 것.
'재벌 총수의 전횡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기업 이사회의 절반을 사외이사로 채우도록 한데 이어 내년부터 소액주주들에 의한 집단소송제 도입을 강행키로 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는 일부 사립학교의 재단 전횡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자 아예 재단 이사회의 학교 운영권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사립학교법을 개정, '소유권 정면 침해'라는 논란까지 일으키고 있다.
문제는 이들 조치가 '개혁'의 명분 아래 무분별하게 강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외이사 50% 의무화' 조항이 그런 경우다.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을 만한 전문가 집단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조치가 강요됨에 따라 기업들은 "쓸만한 사외이사 고르기"에 초비상이 걸렸고, 전체 이사 숫자를 아예 줄여버리는 편법까지 동원되고 있다.
어윤대 고려대 교수는 "임원 선임에서부터 최고경영자의 선택 영역을 제한하는 것은 기업 경영의 사적 영역에 대한 부당한 개입으로 적지 않은 부작용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는 "시장의 실패 못지않게 정부의 실패를 경계해야 한다"며 "(현 정부의) 문제는 시장원리에 맡겨 두고 스스로 조정할만한 시간을 주지 않고 정부가 폭넓게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이 왜 존중돼야 하는지는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과 케이토 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나라별 경제자유와 성장의 상관관계" 조사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이들 기관이 세계 1백2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제자유도 상위 20% 국가들이 90년대에 연평균 2.27%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하위 20% 그룹은 매년 1.45%씩 경제규모가 축소됐다는 것.
두 기관의 조사에서 한국의 경제자유도는 43위에 불과했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