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제5차 장관급회담이 무산된 이후 남북당국간 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전현직 고위당국자들의 대북 전력지원 발언이 쏟아져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북측이 베를린 선언의 전력협력 부분에 기대를 가져왔고 전력지원이 이뤄지지 않자 노골적인 실망감을 표시했다는 점에서 대북전력지원이 이뤄지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세현(丁世鉉) 전통일부 차관(현 국가정보원장 통일특별보좌역)은 대북 전력지원 문제와 관련, "북한측의 (전력)지원 요청이 있었고, 남한측에서도 협의 용의를 가지고 있었으나 미국의 요청으로 논의가 보류되어 있는 상태다"고 밝혔다. 그의 이같은 언급은 특히 정부측의 협의 용의와 미국의 보류압력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에 앞서 장재식(張在植) 산업자원부 장관은 지난 11일 한 조찬 강연에서 "우리가 북한에 전기를 공급하는 대신 북한은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철도 수송권을 우리에게 제공하거나 한국의 수송물량이 유라시아 철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 전력지원에 대한 긍정 검토를 시사한 바 있다. 그러나 장 장관은 추후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정부 차원에서 대북 전력지원 문제가 다각적으로 검토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주었다. 또 임동원(林東源) 통일부 장관은 지난 22일 제주도에서 행한 강연을 통해 "개성산업단지에는 문산에서 개성까지 선로를 연결해 우리의 전기는 물론 가스를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측의 기업이 입주하게 될 남북 합작 공단이라는 점에서 남측에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회담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남북관계 소강국면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역시 주목받았다. 문제는 이같은 정부의 다각적인 검토에도 불구하고 대북전력지원을 결정하는 일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는데 있다. 우선 국내의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대출, 비료지원, 식량지원 등으로 '퍼주기'라는 비난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내년의 지방자치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견지하고 있는 보수적인 대북정책을 돌파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미국은 전력이 전략물자로 전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핵동결의 조건으로 경수로를 건설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측의 전력지원이 북측의 핵동결 파기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고려해 대북전력지원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북 전력지원 문제는 정 전 통일차관이 지적한 것처럼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을 보장하는 동시에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의 주요의제가 될 수 있고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논의를 가능케 하는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교착상태의 남북관계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기자 jyh@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