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극장가에 할리우드 대작공세를 마무리할 두 작품이 차례로 내걸린다. 팀 버튼의 "혹성탈출"(3일 개봉)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A.I."(10일 개봉). 감독 이름만으로도 거부하기 힘든 흡입력을 과시하며 제작단계에서부터 세계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관심작이다. 오락 SF물이지만 "거장"들이 메가폰을 잡았고 그 내면에 탄탄한 존재론적 성찰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들이다. 팀버튼-혹성탈출(Planet of Apes) 1968년 찰턴 헤스턴이 주연했던 영화 "혹성탈출"을 리메이크한 작품. 프랑스 작가 피에르 파울러의 소설을 기반으로 해 원숭이가 인간을 지배하는 가상의 미래를 그린 "혹성탈출"은 특수분장의 새로운 장을 연 동시에 미.소 냉전시대 핵전쟁으로 파멸할지 모른다는 인류의 불안을 섬득하게 담아내며 SF영화의 걸작으로 남았다. 그로부터 33년후. 할리우드의 재간꾼 팀 버튼이 만들어낸 "2001년판 혹성탈출"은 원작보다 훨씬 화려하고 감각적이며 역동적이다. 배경은 서기 2026년. 우주탐사중 전자기장속으로 빨려든 레오(마크 월버그)는 미지의 혹성에 불시착한다. 그곳은 고릴라가 인간을 지배하는 고릴라 제국. 인간은 고릴라의 노예로 부려지고 어린아이는 애완동물로 길러진다. 레오는 "인권"을 지켜주려는 고릴라들과 손잡고 "전복"을 꿈꾼다. 팀 버튼 특유의 기괴하고 환상적인 상상력을 기대했다면,날선 문명비판이 담긴 깊이있는 우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안전한 오락"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린치"등 특수분장으로 이름난 릭 베이커의 정교한 특수분장이나 현란한 의상,세트등이 눈길을 사로잡고 고릴라 제국의 기원이나 마자막 씬의 반전은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를 안긴다. 하지만 원작이 지녔던 충격적인 전율은 상당히 힘을 잃었다. 찰턴 헤스턴이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 미지의 혹성이 사실 지구였다는 사실에 경악하던 데서 읽혔던 치명적인 절망감,폭력적이고 과격한 인류문명에 대한 불안감 대신 놀랄만큼 정교하고 실감나는 특수분장만 두드러진다. 스필버그-A.I(A.I.Artificial Intelligence) 사랑을 느끼고,꿈을 꾸고,자유 의지를 지녔다. 그러므로 살아있다. 그러나 소년의 몸속엔 뜨거운 피대신 광섬유가 흐른다. 사이보그.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 공상과학 영화 "A.I."(인공지능)는 놀랍고 흥미로운 볼거리인 동시에 슬프도록 진지한 영화다.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브라이언 앨디스의 공상과학 단편소설을 읽고 세워둔 미완의 구상을 스티븐 스필버그가 완성했다. 미래. 과학자들의 야심은 지능과 감정을 가진 최초의 사이보그 데이비드(할리 조엘 오스먼트)를 탄생시킨다. 인간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램된 데이비드는 아들이 불치병에 걸려 냉동중인 스윈튼 부부에게 입양된다. "엄마"(프란시스 오코너)를 사랑하게 된 소년은 그러나 아들이 살아 돌아오면서 버림받고 만다. "진짜 소년"이 되면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소년은 동화속에서 피노키오를 사람으로 만들어줬던 푸른 요정을 찾아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영화속에서 감정을 지니고 스스로 소망을 가지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계는 또다른 형태의 생명이다. 인간들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창조된 인조인간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까지 진화하지만 결국 용도폐기 된다. 이 영화는 인간과 기계의 모호한 경계와 그들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묻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까지 주제를 확장해 간다. 큐브릭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미래 공간들과 꿈결같은 비쥬얼이 아름답다. "식스 센스"의 꼬마배우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등골이 서늘할만큼 로봇같은 연기를 제대로 해냈고,쥬드 로가 섹스로봇으로 열연했다. 관객에게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는 영화. 2시간24분이라는 상영시간은 다소 부담스럽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