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소니가 같은 디지털 저장장치를 사용키로 한 것은 디지털 기기에서 각사의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휴대폰 MP3 플레이어 등 모바일 기기분야에서 삼성전자가 가진 제품력과 캠코더 오디오 등 오디오 비디오 분야에서 소니가 가진 경쟁력을 결합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얻을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제휴는 1999년 초 소니측이 먼저 요청해 이뤄졌다. 당시 소니는 메모리카드 사업분야에서 마쓰시타-도시바 계열보다 후발주자였다. 마쓰시타는 소니가 98년 메모리스틱을 자사 제품에 채용하기 시작했던 98년보다 훨씬 이전인 95년부터 'SD메모리카드' 사업을 추진해왔다. 삼성전자도 '스마트미디어카드'라는 마쓰시타 진영과 같은 크기의 메모리카드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메모리카드에 적용되는 보안프로그램의 사용료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고 보안성과 확장성에서 메모리스틱이 유리하다고 판단,소니측으로 선회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제휴로 메모리스틱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플래시메모리를 소니에 공급하게 돼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하는 효과도 얻게 됐다. 두 회사는 홈네트워크 등 다른 사업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이번 제휴로 그동안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던 도시바등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스마트미디어 카드방식으로 제작, 판매해 왔던 MP3플레이어와 디지털 카메라 등의 생산및 판매 조정도 '조용히' 처리해야 할 내부과제다. 소니로서는 이번 제휴를 통해 지난 80년대 VTR규격 전쟁에서 마쓰시타에 당한 참패를 설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당시 베타방식을 고집했던 소니는 기술적 우위와 선발주자라는 이점에도 불구, 우군 확보에 뒤져 'VHS 방식'을 내세운 마쓰시타-일본빅터 연합에 완패했다. 이후 두 회사는 홈비디오 카메라 디지털 오디오 등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규격 전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삼성과의 제휴는 소니에 단순히 패배를 만회하는데 그치지 않고 차세대 가전 업계 판도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줄 전망이다. 메모리 카드는 음악, 영상데이터를 디지털 신호로 보존하는 디지털 기기의 핵심기록장치다. 지금까지의 마쓰시타와 벌였던 표준화 다툼이 '국지전'이었다면 메모리카드 분야는 '세계대전'에 비유될 정도로 막강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패배하는 쪽은 디지털 가전에서부터 디지털카메라 PDA(개인휴대단말기) PC 등 관련제품 전 분야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디지털 전쟁에서 승부의 열쇠는 기술우위보다는 폭넓은 우군확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