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이석주(49·숙명여대 교수)씨의 작업실은 북한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풍광이 빼어난 곳에 있다. 서울에서 경춘가도를 따라 춘천쪽으로 가다가 대성리 못미쳐 강변쪽에 위치한 이 곳에서 그는 9개월째 칩거 중이다. 오는 10월5일부터 한 달 간 서울 성곡미술관 별관 전관에서 열릴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성곡미술관이 제정한 '21세기 한국미술가 초대전'의 '1호 초청작가'로 선정됐다는 점에서 이번 일곱번째 개인전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80년대 '일상'시리즈,90년대 '서정적 풍경'시리즈를 통해 국내 극사실주의 화풍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극사실이면서도 살바로르 달리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초현실세계 낭만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3백호에서 1천5백호에 이르는 대작을 포함해 극사실주의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그는 왜 20여년 동안 극사실주의에 집착하고 있을까. "그동안 오브제 철판작업 등 다양한 시도를 해 봤지만 저한테는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바로 극사실주의라는 점을 깨달았지요" 극사실주의라는 테두리에서 일체 벗어나지 않는 이유가 자신의 성격탓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내성적인 성격에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예민하고 시니컬하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 볼 작품은 '타임'이란 제목이 붙은 대작이다. 3백∼4백호 크기의 캔버스 4개를 이어 붙인 1천5백호 크기로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야심작이다. 이 작품은 시간의 노예가 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발가벗은 상태의 남성들이 어디론가 이동한다. 쪼그리고 앉아있는 인간들도 죄진 듯 불안한 모습이다. 찌그러진 시계를 가면처럼 쓰고 있는가 하면 탈바가지를 걸친 남성도 등장한다. 작가가 80년대 초 선보였던 '일상'시리즈와 맥이 닿아 있는 듯 하다. '일상'이 당시 바삐 움직이는 한국 소시민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면 '타임'은 현대인들의 내면적인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편안한 작업실에 있는 저도 작품을 언제까지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힙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시계는 바로 현대인들이 피할 수 없는 그러한 구속을 의미하죠" 또 다른 대작 '도시풍경'은 황량한 도시의 풍경과 전원풍경을 한 화면에 담은 작품이지만 아직 구상단계다. 그는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라 순식간에 그리는 작가가 아니다. 세심하게 그리고 단계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에 남은 두 달 간 도시풍경과의 씨름은 불가피할 듯 하다.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