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가 언제나 유리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칼날을 쥐고 있다고 언제나 이기는 것도 아니다.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이 바로 그런 종류의 게임이었다. 대우는 "원죄" 지은 삼성을 밀어붙이는 데까지는 우위를 지켰으나 마지막 순간에 승리를 따낸 곳은 대우가 아니었다. 게임은 언제나 그렇듯 뒤집고 뒤집히는 과정의 연속이기도 했다. 이헌재 금감위 위원장은 삼성에 승리를 안겼으나 삼성을 배반한 사람은 김우중 회장이 아닌 이 위원장이었다. 노련한 삼성은 더욱 노회한 이 위원장의 수읽기에 말렸다. 대우 김 회장과 삼성 재무팀, 이 위원장 3자 간에 치열한 두뇌게임이 계속됐으나 서로의 노림수는 처음부터 화해불가능한 것이었다. 오해와 착각, 상대가 속아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가 빚어낸 '빅딜 해프닝'이 오늘 우리의 주제가 되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대우는 처음부터 삼성의 풍부한 자금만 필요했을 뿐이었다. 삼성차를 매개로 삼성그룹 전체를 대우 구조조정에 끌어들인다는 것은 오직 김 회장만 생각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했다. 금액은 2조원. 물건은 대우전환사채(CB)였다. 당대의 재무전략가들로 전위를 세운 삼성이 이를 간파하지 못할리 없었다. 삼성은 첫단계만 하더라도 김 회장의 드라이브를 역이용해 자동차 투자실패라는 '원죄'에서 벗어나기를 도모했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삼성은 내친 김에 '삼성생명 상장'이라는 해묵은 숙제까지 해결하려 했고 어느 순간까지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노회한 '책임 회피'가 다음 수를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위원장은 삼성생명 상장문제를 진흙탕으로 몰아갔고 스스로는 신속하게 손을 씻고 빠져나갔다. 대우.삼성 빅딜은 누군가 오판해 주지 않으면 처음부터 더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게임'이었다. 게임을 푸는 열쇠는 누가 '시간'을 많이 갖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었다. 불행히도 우리의 주인공인 대우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자금수위는 시시각각 내려갔다. 삼성은 정부로부터 온갖 협박을 받았으나 대우를 파멸로 몰아갈 카드가 삼성에는 많이 있었다. 빅딜의 실체와 진실이 드러나기까지는 6개월 이상의 시일이 걸렸다. 오늘의 이야기는 1999년 1월31일 늦은 밤 사방이 적막에 잠긴 청와대 서별관에서 시작된다. [ 특별취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