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43)씨가 장편 "까마귀떼 그림자"(세계사)를 냈다. 엔터테인먼트산업 종사자들의 탐욕과 악마성을 통해 타락한 세태를 고발하고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는 섬뜩한 내용이 담겼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시인 마태오" 등에서 보여준 낭만주의적 동경의 시선을 거두고 냉혹한 눈길로 세상을 응시한다. 서술방식에서도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카메라의 렌즈처럼 그들의 말과 행동만을 객관적으로 포착해 낸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유가욱(대중가요 작곡가) 마린도(프로덕션 기획실장) 백산호(음악잡지 편집자) 황여새(대중음악 평론가) 등 네 명의 남성과 양하와 소야(프로덕션 전 매니저들) 귀리(대중가요 작사가) 등 세 명의 여성이다. 엔터테인먼트산업의 그늘에 기생하는 이들은 부부이면서 연적이다. 동시에 '스타만들기'를 위해 공모하는 거래선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로비와 공갈 협박 뒷돈주기로 깊이 얽혀 있고 쾌락과 거래를 위해 '섹스게임'을 즐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뜨지 않으면 인간 취급을 못받는 '동물의 왕국'이며 오로지 스타를 키워 돈만 벌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왜곡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곳이다. 그들이 출몰하는 모텔 식당 커피숍 지하주차장 등 어디든 퇴폐와 야만의 광기로 가득차 있다. 정글속 욕망의 사슬에서 사랑은 작중인물들의 진술처럼 '가증스런 가면놀이' 이거나 '철저하게 위장된 심리게임'일 뿐이다. 이들은 어느날 '까마귀떼클럽'에 모인다. 취기가 오르면서 내면에 도사린 시기와 욕탐이 폭발한다. 결국 마린도와 가욱에 의해 살인이 잇따라 일어나고 모든 혼란과 광기는 마감된다. 파국의 살인 현장에 대한 묘사는 섬뜩한 광기가 번뜩인다. 작가는 악을 통해 현대사회의 파괴성과 잔혹함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세상에 충만한 죄악을 충격적으로 제소한다. 살인자 가욱은 절망적 현실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집행하는 자인 동시에 심판받아 파멸하는 자다. 먹이사슬로 얽힌 작중인물들의 공멸은 악마적 공간을 벗어날 '낭만적 비상구'가 어디에도 없음을 증언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착잡한 깨달음의 기로에 선다. 작중인물들처럼 좌절한 삶을 살 것인지,타락한 현실과 안간힘을 다해 겨루는 삶을 택할 것인지. 박씨는 "작품속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카메라역할만을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현장의 리얼리티를 한층 돋보이게 하려 했다"고 밝혔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