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출을 확대할 것인가,아니면 감세(減稅)정책을 택할 것인가. 경기부양의 방법론을 둘러싼 여야간 논란은 한마디로 지루하다. 경기의 실상을 과연 제대로 파악하고나 있는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우선 추경예산 편성에 부정적인 야당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국회에 낸 5조5백억원 규모의 추경중 3조6천억원에 달하는 지방재정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중앙정부가 당연히 지급해야할 성질의 것이다. 내국세 징수액의 13∼15%를 지방교육 자치단체와 지자체에 주도록 법이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본예산을 통해 정산하느냐,아니면 추경예산을 편성해 지급시기를 다소 앞당기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작년에 덜 준 액수를 줘야한다. 그렇다면 세계잉여금에서 이를 정산해주겠다는 게 그렇게 문제가 될 까닭이 없다. 경기가 나쁘지 않은 상황이더라도 그러하다. 지금 주면 내년 지자체장 및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사업에 쓸 우려가 크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설득력이 없다고 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년에 정산해주면 그럴 우려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더욱 문제가 있는 것은 정부 여당이다. 추경예산과 올해 본예산의 불용 및 이월액 최소화로 10조원정도 재정지출을 늘리겠다는 얘기지만,도무지 미덥지가 않다.지난 1월부터 예산을 조기집행해 경기를 부추기겠다고 몇차례나 밝혔는데,불용 및 이월규모 최소화로 4조1천억원이나 재정지출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게 또 무슨 소리인지 납득이 가지않는다. '공공투자사업 등의 예산 조기집행'이 과연 말대로 실천됐는지도 의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4조1천억원'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의심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공적자금 등 정부가 떠맡아야할 빚이 엄청난 상황이기 때문에 경기부양을 위해 과감하게 적자재정을 짜라고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는 너무 미약한 감이 있다. 경기와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간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다는 국외자(局外者)나 구경꾼들의 논리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채 엉거주춤하고 있는 게 오늘의 정책당국자들이다. 경기부양론이 불거질 때마다 '구조조정이 우선이고 경기부양은 그 다음'이라는 식으로 토를 달고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게 느껴진다. 대우자동차 하이닉스반도체 서울은행 등 이른바 구조조정 현안들을 처리하는 것이 경기상황과 연관지어질 일이 아니라고 볼 때 경기부양과 구조조정의 선후를 논하는 것 자체가 따지고 보면 우스운 일이다. 그럼에도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경기부양책이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책임있는 정책당국자들이 되풀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고 본다. 경기부양→물가불안이라는 도식적인 사고,경기부양=기업지원=특혜라는 해묵은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로 출범 1주년을 맞은 진념 경제팀의 딜레마는 운신의 폭이 좁다는 점일 것이다. 경기는 나쁘고 재정사정도 어려운 상황,그래서 재정정책의 선택범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엉거주춤한 선택,부양책을 펴겠다는 것인지,않겠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한 자세가 합리화 될 수는 없다. 선택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방향을 분명히 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경제상황도 더욱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물가와 경기,소비와 생산,내수와 수출 그 어느 쪽도 여유가 없는 상황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뒤쪽이다. 5월 이후 그런대로 안정세를 되찾고 있는 물가,전년동월비 감소세에서 증가세로 반전된 소비재 출하와는 대조적으로 20%나 감소한 수출,계속 마이너스 상태인 설비투자,내림세가 두드러지는 기업체감경기지수 등의 통계가 그렇게 말해준다. 무엇보다도 먼저 기업투자의욕을 되살려야 한다. 사상초유의 저금리상태에서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설비투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콜금리를 0.5%포인트 더 내리고 재정지출을 얼마간 늘린다고 기업의욕이 활성화되고 경기가 뜰지는 의문이다. 경제외적인 불확실성 제거가 선행돼야 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경기문제는 경제팀만의 힘으로 풀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 본사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