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연 <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 얼마 전 독일 본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미국은 침묵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환호하는 가운데 교토의정서 이행을 위한 정치적 결정문을 채택했다. 국제사회가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구체적인 이행기반을 마련,지구환경 협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합의 내용이 여러 가지 예외조치를 허용하고 있어 일부 환경론자들은 '구멍난 스위스치즈와 같은 합의'라고 폄하한다. 하지만 완전결렬 위기 속에서 1백80여개국 대표가 최소한의 공통 분모를 찾아냈고 또 인류가 환경보존과 경제성장을 통합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을 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번 합의로 부시 미국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더욱 고립된 반면,유럽연합(EU)은 지구 환경문제에서 리더십을 과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은 자국의 이행부담을 크게 덜면서 교토의정서를 회생시켰고, 개도국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면서 재정과 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번 합의가 교토의정서 발효로 이어지기까지는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이 합의를 법률적인 결정문으로 만드는 후속 실무협상때 교토의정서 불이행국가 제재조치에 대한 해석에 이견이 생겨 오는 10월 말 모로코에서 열리는 제7차 당사국 총회에서 다시 협상을 갖기로 했다. 일본은 이번 합의를 환영하지만,교토의정서의 실제 이행은 앞으로 세부 사항에 대한 교섭 여하에 달려있다고 했다. 아울러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선진국 정부와 산업계의 시각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도 교토의정서 비준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듯 하다. 미국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에 참가하지 못하는 등 경제적 손해를 보게 됐다. 반면 온실가스를 감축하게 된 EU와 일본 기업은 경쟁력 측면에서 미국 기업에 비해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국이 교토의정서를 계속 거부하는 경우 이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EU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교토의정서 발효에 반대하거나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3월 교토의정서 반대 입장을 표명한 이후 각료급 회의를 11차례나 열면서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시장기능과 신기술을 활용한다'는 기본 원칙외에는 아직까지 구체 내용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10월 당사국 총회에 즈음해 발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당분간 EU를 중심으로 교토의정서를 발효시키기 위한 세부협의를 추진하고,미국은 독자 방안을 추구하는 2원적인 방식이 병존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을 교토의정서 체제에 편입시키기 위한 EU와 일본의 노력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미 정부와 입장을 달리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앞으로 교토의정서에 가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키 위해 이산화탄소 규제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지만,기후변화 협약상 '개도국'으로 분류돼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담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국제적 온실가스 감축 질서가 강화될수록 우리와 같은 선발개도국에 대한 감축의무 부담 압력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이번 협상에서 선진국 감축방식이 확정된 만큼 앞으로 개도국 참여 방식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중국 인도 등 개도국의 불참을 이유로 교토의정서를 탈퇴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EU는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선발개도국의 의무 부담 문제를 미국과 적극 논의할 것으로 보여진다. 콘돌리자 라이스 대통령 안보보좌관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개도국들을 포함한 전세계국가들이 참여하는 방안이어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기본 입장을 강조한 바 있다. 한국정부는 우리 경제가 부담하기 어려운 '지구 온난화 가스 감축의무'가 미국이나 EU에 의해 본격 제기되기 전에 우리 능력에 맞는 온실가스 감축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를 위한 산업정책이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