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정부 고위관료의 '입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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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 인수를 추진중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1백년 역사는 인수합병(M&A)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GM의 1백년에 걸쳐 쌓아온 협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게 자동차업계의 정설이다.
이들은 절대 협상전략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대우차 인수에 대해서도 웬만해선 코멘트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반대다.
협상의 실권을 쥐고 있는 정부 관료들은 때만 되면 한마디씩 하고 싶어 하는 것같다.
진념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분할매각은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2000년 9월30일)
"대우차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고 있다.
GM은 대우차 인수 후 동북아 생산기지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부평을 함께 판다는 게 기본방침이다"(2001년 5월7일)
"기업구조조정 문제가 7월중 가닥이 잡히면 외국투자자들이 몰려올 것이다"(2001년 6월11일)
"기업들의 매각협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시한에 얽매일 필요는 없으나 1,2개월안에 가닥을 잡아야 한다"(2001년 7월5일)
"이달내에 처리하겠다"(8월8일)
일관성이 없을 뿐 아니라 매각대상 처리방식 협상시한 등 입밖에 내지 말아야 할 전략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를 두고 한국정부의 국제협상력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는 식상하기조차 하다.
진 부총리의 얘기는 우리의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그치지 않는다.
지난 1월에는 "GM이 다음달 이사회에서 대우차 인수와 관련된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인 희망사항이었을까.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왜 지금까지도 협상이 이렇게 지지부진한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 해 포드가 대우차를 포기한 직후 진 부총리는 "대우차를 빨리 정리하기 위해 선인도 후정산 방식도 적극 검토하겠다"(2000년 9월18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가격보다는 빨리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정부 입장을 서슴없이 내비쳤다. 너무 쉽게 속을 내보이는 우리 관리들의 조급증이 GM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된 이유중 하나라고 해석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김용준 산업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