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 "아빠 식사 드세요" .. 김성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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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예법에서 그중 으뜸이 되는 기준으로 치는 것은 나이였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길에서 만나면 단정한 자세로 반듯하게 서서 깊숙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요즘은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손아랫사람을 보기가 드물어졌다.
8.15와 함께 성하게 된 것이 악수인데, 악수에도 법도가 있을 것이다.
손아랫사람이 먼저 고개를 숙여 아는 체 하면 손윗사람이 손을 내밀고, 그러면 손아랫사람이 왼손으로 바른 손목을 받치면서 그 손을 잡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손아랫사람 쪽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데는 다만 기막힐 뿐이다.
반갑다고 손을 내미는데 차마 모른 체 할 수 없어 마주 손을 잡아주기는 하지만 영 씁쓸한 기분이다.
당최 땡감을 씹은 기분이기는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데, 잡았던 손을 놓고 어깨높이로 들어올려 흔들며 하는 말인즉, "또 봅시다".
이른바 예의범절이라는 말을 할 때면 거지반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이 있으니, '시대'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이라는 것.
그들이 내세우는 전가의 보도가 '유교잔재' 또는 '봉건유제'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예의범절이라는 것이 진실로 타기해야 마땅할 전시대의 낡은 유습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어떠한 시대, 어떠한 세상이 온다고 할지라도 굳건히 지켜내야 할 최소한의 가치라는게 있다면, 예의범절일 것이다.
사람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켜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 바로 예의범절일 것이며, 서로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이 예의범절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분간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조건이 된다.
"아무개 엄마 있어요"
"시방 집에 없습니다만…"
"언제 와요"
"저녁 때 온다고 그랬습니다만…"
"알겠어요"
찰칵 소리와 함께 끊어지는 전화였고, 푸우- 긴 한숨과 함께 담배를 입에 물 수밖에 없으니, 몸이 상하는 것이다.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하는 말투나 그 말투를 실어나르는 분위기,곧 품격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난다.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너무도 딱 떨어지게 예의바른 전화여서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원고청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도 있듯이, 예의라는 것은 이처럼 아주 중요한 것이다.
친구의 경우도 그렇지만 선배가 된다고 할지라도 전화로 찾을 때는 높임말을 써야 한다.
"아무개 집에 있어요"가 아니라 "아무개 엄마 댁에 계셔요"가 맞고, "언제 와요"가 아니라 "언제쯤 통화할 수 있을까요"가 맞는데,더구나 견딜 수 없는 것은 "알겠어요"이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도 그렇지만, "알겠습니다"가 아니라 "알겠어요"이니,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의 말버릇인가.
가까운 손아랫사람한테가 아니라면 절대로 쓸 수 없는 마지막 인사말이 '수고' 운위하는데, 요즘에는 한술 더 떠서 '건강하세요'로 끝을 맺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으로서야 상대방의 건강까지 염려해 주는 지극한 자비심의 발로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단한 결례의 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또 그렇게 많지 않은 듯 하다.
건강하라고 말한대서 건강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무엇보다도 우선 어법에 맞지 않으니, 손윗사람한테는 더구나 쓸 수 없는 명령투의 말인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이 "…하더라구요"라는 말이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정부인네들이 즐겨 쓰는 말인데, "…같아요"와 함께 대표적인 몰주체적 표현으로 진정한 자존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단코 쓸 수 없는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드세요'라는 말이다.
텔레비전을 필두로 한 방송매체며 주변 어디서나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인데, 심한 경우에는 "아빠, 식사 드세요"까지 나간다.
장성한 여자가 자기 아버지한테 하는 말인데 '아빠'라는 혀짤배기 말도 그렇지만, '드세요'는 존댓말이 아니다.
'아버지 진지 잡수셔요'가 올바른 표현이다.
'식사'는 왜말이고, '진지'가 우리말이다.
'진지'라는 말과 함께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이 '잡수시지요'이나, 존칭이 없는 영어만 기를 쓰고 배우는 것만이 이른바 '세계화'라고 신앙하는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