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앞두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 맺힌 사연을 그들의 초상을 통해 보여주는 정원철(41·추계예술대교수)씨의 '접어둘 수 없는 이야기'전이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납 등에 할머니들의 인물화를 찍은 판화작 32점을 전시 중이다. 홍익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정씨는 인간의 삶을 판화 등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표현하는 작가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다. 1995년에는 판화비엔날레 중 가장 권위있는 슬로베니아의 '제21회 류블랴나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1등을 수상하는 등 많은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구겨진 삶''접어둘 수 없는 이야기''다가가기''회색의 초상' 등 4개의 단편으로 짜여져있다. '구겨진 삶'과 '접어둘 수 없는 이야기'는 납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물화를 찍은 작품이다. 구겨진 납판의 주름과 할머니들의 얼굴 주름이 어두운 바탕과 어울려 묘한 여운을 준다. '다가가기'는 왼쪽에 김순덕 김복동 등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모사한 작품을,오른쪽에는 할머니들의 초상과 골이 패인 손을 찍은 판화를 붙인 연작이다. 작가는 1997년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방문하면서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98년 여주에 있는 '일본군위안부역사관'에 할머니들의 초상화를 초대형 캔버스에 담은 '증언의 장'을 제작했다. "아우슈비츠 방문을 계기로 역사적인 사실과 기록이 주는 중요성을 점차 깨닫게 됐습니다. 제가 그리는 삶의 모습은 공익적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서로 나누는 소박한 뜻이 담겨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늘진 기억을 드러내기보다는 굴절된 그들의 역사를 현대인들이 공유하는지를 끈질기게 되묻고 있는 셈이다. 31일까지. (02)733-5877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