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을 뒤쫓던 경찰이 "게 섰거라" 소리치니 도둑은 "너라면 서겠냐"고 하더란다. 길거리에서 껌 장사를 한시간만이라도 해보면 구조조정이니 통화안정이니 하고 한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몰아붙이던 기업경영자가 있었다. 각자의 위치와 입장에 따라 시각도 처방도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고통없이 해결할 수 있는 경제문제는 없다. 여·야·정이 경제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경제협의회를 열었다. 구조조정과 경제활성화를 상호보완적으로 추진한다는 합의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애매하다. 대기업 규제정책은 논의만 있었고 국민세금부담 경감이나 추경예산 편성에는 여야의 시각이 달랐다. 모처럼 만난 모임의 결과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하고 실망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솔직히 경제를 당장 살릴 묘책은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왜 지금까지 가만 놔두었을까. 정부는 경기부양이란 말이 구조조정의 포기로 비쳐질까봐 제한적 경기조절이라는 애매한 표현까지 동원하더니 경기부양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 같다. 경기를 살리겠다는 걸 누가 마다하겠는가. 재정자금의 조기집행이 쉽지 않게 됐고 조기 집행된다 해도 그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규제완화는 부양정책의 내용으로서가 아니라 잘못된 것이면 당연히,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시행해야 옳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되고 대형부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금융권은 돈을 쌓아두고도 기업에 대출하기를 꺼린다. 쓰러져야 할 기업은 지원에 힘입어 연명한다. 돈을 풀어도 금리를 내려도 여건이 나쁘니 기업은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을수록 주사 한대로 되살리겠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정책의 무게중심이 경기부양쪽으로 기울면 구조조정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외쳐도 그건 물 건너 간다. 구조조정이란 무엇인가.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경쟁력을 잃지 않고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다. 잘 나갈 때에도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단순히 부실정리나 정리해고 같은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름옷을 겨울에 장만하면 싸게 먹힌다.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는 것이 경기대책이다. 당장 수확량 올리기 위해 농사기반을 허무는 것과 같은 경기부양이어서는 안된다. 터널을 섣불리 뚫으면 두개의 터널이 생길 수 있다. 양쪽 방향에서 터널을 뚫다가 운이 좋아 만나면 한개,안만나면 두개의 터널을 만들어 버리는 게 한국식이라고 매킨지보고서는 지적한다.처음부터 만나는 지점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않고 일을 벌이는 사고방식과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잘못 만들어진 터널을 메우는 작업은 또 얼마나 낭비인가. 경기부양이 이와 같은 터널 뚫기여서는 안 된다. 계획없이 터널을 마구 뚫다가 IMF사태를 맞게 되지 않았던가. 우리는 지금 선진국과 중국을 비롯한 후발 개도국 사이에 끼여 협공을 받고 있다. 마치 호두까기 기구 속에 낀 호두 같다. 적당히 대응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경제 살리기에 힘을 쏟아도 부족할 텐데,왜 갑자기 주5일 근무제 조기실시 문제가 제기됐을까.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준비 안된 걸 서두르면 의료개혁처럼 탈난다. 젊어서도 늙어서도 놀고,직장이 있어도 많이 놀고,직장이 없으면 당연히 노는 세상을 만들려는 것인가. 앞길이 막혀 있는 것 같아도 멀리 내다보면 길은 보인다. 1992년 미국 대통령당선자 클린턴에게 "20년 후의 바람직한 미국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런 미국을 만들기 위해 4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충고한 경제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경제부총리의 말도 머리를 맴돈다. 그런데 그런 정치를 누가 하는가. 현실적으로 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은 없다. 의사에게 약사에게 기업가에게 노동자에게 농민에게 또 서민에게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약속을 남발하면 그건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인기영합정책이다. 과욕은 반드시 후유증을 남긴다. 멀리 내다보고 능력을 키우면서 기본을 다지는 길이 구조조정이다.껌 장사를 안 해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