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을 떠나는 의대 교수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교수들의 "탈(脫)병원-의원 개업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른바 인기,비인기 진료과목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 가속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병원장 후보 0순위 의사들도 미련없이 대학문을 나서는 중이다. 의과대학들은 당장 2학기 수업과 진료 차질 등을 걱정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의원-중소병원-대형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가 왜곡되지 않을까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교수 이직=12일 의료계에 따르면 가톨릭대의료원의 경우 교수 사직은 해마다 20명 안팎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는 무려 40여명이 병원을 떠났다. 이들 외에 4명의 교수가 사직원을 제출,수리를 기다리는 중이다. 오는 가을 개원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진료과목도 간염내과 일반외과 혈액종양내과 응급의학과 등 비인기 과목이다. 한양대병원에서는 얼굴 마담격이었던 김성윤 전 류머티스내과 교수가 퇴직,오는 9월초 개업할 예정이다. 대학병원장 후보로 꼽혔던 김 교수의 이직은 의료계 전체에 교수로 남는 것보다는 실속있게 개업하는게 낫다는 의식을 더욱 확산시켰다. 한림대의료원의 경우 이비인후과의 간판스타였던 한강성심병원 박문서 교수가 최근 사직원을 냈다. 박 교수 역시 차기 병원장감으로 자천타천됐던 실력자중 한사람. 이밖에 의료계의 '네마리 용'으로 불리는 서울대병원 연세대의료원 서울중앙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을 제외한 대다수 병원에서 최근 두달새 3∼9명의 교수가 사직서를 냈다. 최근 석달새 대학 강단을 떠난 주요의대 교수는 50명선인 것으로 파악됐다. ◇"개업의가 훨씬 낫다"=김성윤 전 교수는 교수들의 이직 러시 이유에 대해 △봉급생활자로서의 한계 △연구·교육 분위기 침체 △의약분업 투쟁으로 실추된 명예 △대학병원의 수익성 악화와 이에 따른 근무강도 가중 등을 제시했다. 고려대의료원의 한 교수는 "의대교수가 연구와 교육은 등한시한채 병원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돈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개원해 돈을 버는게 낫다는 분위기가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의대 교수가 개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다. 성형외과의 경우 특히 그렇다. 중견교수는 7천만원의 연봉을 받지만 개원하면 14배인 최소 10억원 이상은 보장된다는 게 통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성형외과 의사가 하도 많이 빠져나가 해당과목 간판을 내려야 할 처지"라는 자조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중소병원 활성화 정책 시급=이같은 대학병원의 '공동화'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는 물론 최악의 경우 의료전달체계의 붕괴까지 초래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병원의 한 교수는 "이렇게 가다가는 고난도 수술을 할 칼잡이(외과의사) 양성이 어렵게 될 것"이라며 "위암 대장암을 수술할 사람들이 밖에 나가 맹장염이나 치질을 수술한다면 이는 소중한 의료자원 낭비"라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의약분업 이후 대형(3차)의료기관은 밀려드는 환자를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중소병원(2차)은 부실해지며 의원급(1차) 의료기관만 비대해지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대형병원보다 진료비가 상대적으로 싸고 장시간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의원급보다는 진료서비스 질이 좋은 중소병원의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의료정책이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