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인들이 많이 몰려있는 이른바 벤처밸리에선 "툭하면 벤처단지냐"는 시큰둥한 반응을 자주 접할 수 있다. 토지개발 계획을 세울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해 지겹다는 것이다. 판교 신도시 건설안이 부상했을때 논란의 중심에 벤처단지가 있었다. 영종도 개발안을 구상할 때도 벤처단지가 들먹거려졌다. 가장 최근엔 정부와 수자원공사가 시화 간석지에 대단위 벤처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본지 특종으로 나갔다. 이제 '벤처단지'는 정부의 개발계획안에서 빠질 수 없는 '감초'가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벤처기업인들이 벤처단지와 관련된 정부발표를 봐오면서 감초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조성된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벤처단지)는 이미 전국 20곳에 면적만도 2천만평에 이른다.또 정부가 내년까지 새로 건립하겠다고 발표한 테크노파크(벤처단지와 동일함)도 8곳에 40만평에 달한다.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나 테크노파크와 마찬가지로 세제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진흥시설도 15곳이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각 대학들도 벤처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도 별도의 창업지원센터나 신기술보육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벤처기업인들 사이에 "어디 땅이 없어 벤처 못하나요"라는 얘기가 나올만 하다. 한마디로 벤처단지 공급과잉 시대를 맞은 것이다. 수급법칙에 따라 결과도 뻔하다. 불경기 영향 등으로 인해 단지분양률도 대체적으로 바닥을 헤매고 있다. 인천 송도 미디어밸리의 경우엔 2백40여 벤처기업을 모집하고 있지만 실제 입주를 신청한 벤처기업은 40여개사에 불과하다. 각 지자체가 무차별적으로 내놓은 벤처단지의 사정도 비슷하다. 벤처단지의 수급을 정부차원에서 면밀하게 조사·분석하고 체계적인 방안을 마련해 볼 시기인 것 같다. 전국적으로 벤처단지 및 테크노파크 만들기 경쟁이 지속된다면 '묻지마 벤처단지 조성'으로 인한 후유증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박준동 벤처중기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