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쇠젓가락으로 콩자반을 집을 수 있는 정교한 손재주. 방안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청결함. 무슨 일이 있어도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려는 책임감.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를 한국에 내준 일본의 전문가들이 분석한 '한국이 메모리 1위 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의 제조업종을 제패한 일본이 한국을 부러워하는 유일한 산업이 바로 D램(메모리) 산업이다. 대만 등지의 업체들이 바짝 뒤쫓고 있지만 아직도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굳건하다.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D램은 컴퓨터 메모리로 주로 쓰이며 시장 규모가 가장 크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해 D램시장에서 각각 67억달러와 55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시장조사기관인 데이터퀘스트는 집계했다. 시장점유율은 각각 20.9%(1위)와 17.1%(3위). 한국이 세계 D램 시장의 38%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인텔의 펜티엄4 등에 들어가는 초고속 D램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램버스D램시장에서,하이닉스반도체는 DDR(더블 데이터 레이트)시장에서 각각 주도권을 쥐고 있다. 휴대폰 서버 등에 주로 들어가는 S램 시장에서도 두 회사는 지난해 총 20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세계시장의 26.9%를 차지했다. 계속되는 가격 하락으로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합쳐 지난해 한국 총 수출의 15.1%(2백60억달러)를 차지했던 비중이 올 상반기엔 10.9%(85억8천만달러)로 낮아졌지만 반도체의 경쟁력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는 평가다. 기술 수준에서 한국의 메모리산업은 탄탄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2월 4기가 D램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개발속도로 보면 일본업체에 비해 9개월 가량 기술 격차가 벌어져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같은 기술력 덕분에 삼성전자는 일본업계로부터 0.1㎛(1백만분의 1m) 이하 초미세 반도체 공정기술을 개발하려는 아스카 프로젝트와 미라이 프로젝트에 각각 초청받기도 했다. 국내의 반도체 업체들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IT업계의 불황 여파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현물시장에서 한때 8달러에 이르렀던 64메가 D램의 경우 지난달에는 한때 75센트까지 떨어졌다. 이같은 가격 폭락으로 세계 메모리업체들이 줄줄이 적자를 내고 생산을 줄이거나 투자계획을 뒤로 미뤘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자신들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D램의 미래를 밝게 보고 있다. D램이 다른 메모리 제품의 영역인 휴대폰 PDA 네트워크장비를 비롯한 디지털 전자제품에도 파고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데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속도와 크기 등이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은 또 D램 분야에서 획득한 기술을 비메모리와 차세대 메모리분야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스템을 반도체에 집적시킨 비메모리 반도체 SOC(시스템 온 칩)에도 D램 플래시 등의 메모리 기술이 결합되고 D램이 그 가운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임형규 사장은 말한다. 국내업체들은 이와 함께 D램의 대용량 저장기능과 S램의 빠른 데이터 처리속도,플래시 메모리의 데이터 보존기능 등의 장점을 고루 갖춘 강유전체메모리(Fe램)와 데이터를 읽는 시간이 플래시메모리보다 1천배 가량 빠른 M램(마그네틱램) 등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