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사람인줄 알았는데 (결국) 보통 사람이 된 것이지요"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한 13일 저녁 자민당의 한 의원은 이같은 말을 내뱉었다. 어떠한 비판이 따르더라도 8월 15일에는 '반드시' 신사를 참배하겠다고 다짐하길래 지켜 봤는데 약속을 어겼다는 코멘트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가 걷잡을 수 없는 충격을 몰고 온 시각,자민당 일각에선 앞으로의 경제개혁 차질을 우려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한번 말을 꺼내면 꼭 실천한다고 알려진 총리의 이미지가 이번 일로 손상을 입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고이즈미 인기에 역풍을 점치는 견해는 틀린 게 아니다. 80%를 넘어섰던 고이즈미 지지도의 뿌리는 신뢰와 솔직함에 있다. 직선적 화술과 성품은 정치인들의 화려한 수사와 가식에 질린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참배를 계기로 '신뢰'에 금이 간 이상 등을 돌리는 유권자가 적지 않을 것이란 계산은 상당한 근거를 지닌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고이즈미 자신이 자초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는 자민당 총재선거전에 뛰어들 때부터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꼭 가겠다며 보수우익에 러브 콜을 보냈다. 고이즈미 총리가 자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를 몰랐을 리는 없다.그렇지만 그는 신사 참배를 나라의 체면을 바로 세우는 것으로 생각한 극우보수의 지지와 인기에 취해 '하지 말았어야 할 약속'을 했고 자신의 족쇄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간 셈이다. 별난 사람 고이즈미 총리가 키를 잡은 후 일본호는 아시아 지역 항해에서 유독 많은 사고를 냈다. 역사교과서 왜곡,어업협상 등 곳곳에서 자신이 깔아놓은 암초에 부딪치며 이웃나라와의 우호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고이즈미 총리의 앞날은 인기 하락과 반개혁세력의 저항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는 경제개혁 못지 않게 손상된 대외 관계를 한시바삐 회복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그의 신사 참배를 규탄하는 서울과 베이징의 불같은 분노는 다시는 일본에 속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