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아공업고등학교 과학부 선생과 학생들은 여름방학중에도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바쁘다. 연구비 수십억원급의 대형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이들은 신명나게 연구하고 있다. 한국과학문화재단 사이버과학연구센터로부터 작지만 값진 1백만원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구 주제는 "가상공간".과학반을 운영하는 이인호(38) 교사는 화학 과목을 맡고 있지만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 90년 이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혼자서 컴퓨터를 배웠다. 이 교사는 "우수한 인력들이 서울로 많이 빠져나간 탓인지 부산시내 컴퓨터학원에 가봤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며 "책을 펴놓고 독학하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저자한테 직접 연락해 묻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2년전 인천의 한 교사가 동영상을 수업에 활용하는 것을 보고 컴퓨터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학식처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유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우선 분자구조를 2차원 영상으로 제작하는 작업부터 했다. 칠판에 엉성하게 분자식을 그리는 것보다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고 컬러를 사용한 덕분에 학습효과가 좋았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 교사는 3차원 가상현실까지 수업에 활용해야겠다고 작정했다. 첫 제작물은 지난해 10월 내놓은 태풍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파란 천 앞에서 태풍에 관해 설명하고 이를 캠코더로 촬영한 뒤 편집기로 불러들여 태풍이 몰아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와 합성했다. 첫 작품이라 다소 엉성했지만 학생들은 함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이어 불꽃놀이 개기일식 등을 잇따라 제작했다. 실험도중 활용할 수 있는 동영상도 제작했다. 시설이 부족해 화학 실험을 하기가 쉽지 않은 터라 인터넷을 통해 미리 제작된 동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실험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고 학생들도 쉽게 이해했다. 이번 여름방학중에는 과학반 학생들과 함께 분자구조를 입체적으로 설명하는 가상현실 동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싼 리눅스 서버를 별도로 구입했다. 부족한 기자재는 과학문화재단으로부터 받은 연구비로 충당하고 있다. 과학반 학생들도 적극 돕고 있다. 이 교사는 분자구조를 마치 여러 행성이 태양 둘레를 회전하는 것처럼 3차원으로 연출하면서 정확한 시나리오로 원자핵과 전자를 설명할 예정이다. 소문난 모범생인 여상모(3학년)군은 "시나리오를 짜고 가상현실 동영상을 제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과학올림피아드에 나갔을 만큼 과학에 관심이 많은 진건호(3학년)군과 물로켓 발사대회에 참여했던 정재훈(3학년)군도 "상상의 세계를 마음대로 그려낼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며 열성적으로 일에 참여하고 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은 아직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하지 못하지만 직접 써보면 어른들보다 훨씬 빨리 익힌다"며 "시나리오 작성에서 카메라 촬영,컴퓨터그래픽 제작 편집 등 모든 과정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