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업계 핵심 주역의 한명으로 손꼽히는 박항구 현대시스콤 사장. 한때 몸담았던 현대전자가 어려움에 처하면서 잠시 무대 뒷쪽에 물러나 있던 그가 최근 전면에 나섰다. 시스템사업부문이 분사해 설립된 현대시스콤의 CEO(최고경영자)를 맡게 된 것. 박 사장은 감회를 묻자 "시스템장비 분야에서 삼성전자 LG전자와 실력을 겨루던 옛 현대전자의 영화(榮華)를 되찾는데 전력을 다 쏟겠다"고 말했다. 사실 현대시스콤의 현재 모습은 삼성전자나 LG전자와 비교가 안될 만큼 약체이다. 작년 한햇동안 심한 홍역을 치르면서 우수 연구인력이 대거 빠져나갔다. 이동통신장비의 핵심인 단말기와 네트워크 사업도 따로 떨어져 나가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게 됐다. 박 사장은 올해를 "인큐베이팅 기간"으로 정했다. 시스템사업에서 핵심인 연구개발력을 다듬고 영업력도 강화해 다시 태어나는 해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박 사장이 전면에 나서자 그동안 동요하던 연구인력들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지난해 동료들이 떠나 군데군데 자리가 비었던 이천의 시스템연구소는 다시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이다. 박 사장은 엔지니어들을 독려하기 위해 특별한 약속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천 연구소에서 보낸다. 박 사장은 현대시스콤을 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첫번째 과제로 cdma2000 1x 시스템 공급을 꼽았다. 현대시스콤이 분리되기 전인 금년초 하이닉스(옛 현대전자)는 KTF에 대한 cdma2000 1x 시스템 공급권을 따내고도 납기를 맞추지 못해 중도하차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반도체사업이 위기에 몰려 정신이 없었던 탓이다. 박 사장은 "현대시스콤이 4개월만 더 빨리 출범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연말로 입찰이 예정되어 있는 KTF의 지방 시스템 구축권은 반드시 따내겠다"고 말했다. 그 다음 목표는 해외시장 진출이다. 1x 기반의 인빌딩(건물내)용 소형 기지국시스템과 WLL(무선가입자회선) 장비는 이미 상당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 상태이다. 미국 최대의 이동통신사업자인 스프린트에 인빌딩시스템 시험망을 공급한 실적도 있다. 시스템 인증이 끝나면 대규모 수출을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삼성 LG 등 대기업이 손대지 않은 소형 기지국과 지능망 서비스 같은 특화된 장비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박 사장은 "연구개발,영업,해외거래처 확보 등 그동안 단절된 모든 사업을 회복시켜 내년에는 연간 매출 1천8백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 사장의 권토중래(捲土重來)가 어떤 결실을 맺을 지는 통신업계 전체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