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넓을순 없다. 물놀이에 한창인 듯한 사람들이 먼발치 개미처럼 가물거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그재그로 물을 향해 달리던 아이들이 금세 지친듯 헐떡인다. 물이 빠지면 2백~3백m 폭으로 활처럼 휜 5리 길이의 모래평원을 이루는 해변. 충남 태안의 신두리해변은 올망졸망한 서해안의 여느 해변과 달리 사뭇 장쾌하다. 첫인상은 신통찮다. 거무칙칙한 해변이 "뻘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해변가 민박집인 가나안의집의 박중동씨는 "모래가 분명하다"며 껄껄 웃는다. 가까이서 보니 하얀 모래가 1~2m 폭으로 길게 띠를 이루고 있다. 이어지는 검은색 해변도 모래가 분명하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게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곳곳에 엄지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물이 들어오기를 숨어 기다리는 조개들의 은신처. 호기심 어린 눈매의 아이들이 연신 손가락을 넣어 모래를 떠낸다. 생명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서해의 잔 파도위에 몸을 맡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진다. 8월의 뙤약볕이 마지막 열기를 더하는 오후. 마파람이 분다. 굴양식을 위해 엇비뚜룸히 세워둔 구조물 사이를 지난 마파람은 알수 없는 그리움을 안긴다. 해안으로 올라서면 해변보다 유명한 사구(모래언덕)가 나타난다. "한국에도 사막이 있다"는 말이 손색없다는 큰 사구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8배나 된다. 사구 전체를 훑어 보기에 제일 좋은 신두리1번지 민박집의 옥상. 뜻밖에도 모래는 잘 보이지 않는다. 키작은 초록풀과 잡목, 오른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둘러 쳐져 있다. 민박집 주인장 조재범씨는 "찬바람이 불면 사구의 하얀 세상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무시무시한(?) 글귀가 적힌 플래카드가 10여개 걸려 있다. 사유지인 이곳을 개발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쪽의 주장들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이 일대를 천연기념물로 가지정했다. 빙하기 이후 1만5천여년 전부터 바람에 의해 형성된 이곳의 사구는 보존해야할 지질학적 가치가 있다는 것. 갯방풍 갯메꽃 모래지치 순비기 등과 쇠똥구리 금개구리 등 멸종위기 생물들이 이곳을 삶터로 하고 있어 생태학적으로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차바퀴 자국이 선명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그 모래언덕의 맨얼굴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들 신발을 벗고 고운 모래의 감촉을 즐긴다. 신두리1번지 민박집의 안주인은 "바람에 따라 사구 전체의 모습이 늘 변한다"며 "움푹 파인 곳에 빗물이 고이면 개구쟁이들의 천연수영장이 되곤 했다"고 회상. 붉은 해가 옅은 해무로 가린 의항쪽으로 떨어진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풀어야 할 숙제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멀리 해변위를 맨발로 걷는 한쌍 연인의 모습 만큼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태안=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