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엘 니도'] 에머랄드빛 바다...원시의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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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니도(El Nido) 군도에서 맞은 두번째날.
카약을 타고 숙소를 빠져 나왔다.
섬 가장자리를 따라 20분쯤 노를 저었을까.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안쪽에서 "스몰라군"이 모습을 내비친다.
석회절벽이 병풍처럼 에워싸면서 형성된 바다호수다.
물결은 유리원반처럼 매끈하다.
투명한 수면 밑으로 햇빛을 머금은 산호가 잔잔한 빛을 발한다.
노젓기를 멈췄더니 숨막힐듯한 적막감이 감돈다.
세상이 멈춰버린 듯.
도시에서 묻어온 번잡한 기억은 코발트빛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만들어낸 거대한 원시에 이내 묻혀버린다.
엘 니도.
필리핀에서도 청정해역으로 이름난 팔라완제도의 북쪽 끝에 위치한 군도다.
약 50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으며 대부분 무인도다.
스페인어로 "둥지"를 뜻하는 엘 니도는 이곳 섬들의 해안절벽을 따라 바다제비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다소 생소하지만 이미 세계적 휴양지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엘 니도의 매력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함에 있다.
여느 휴양지의 북적이는 피서객들을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다.
가족단위나 연인 둘이 즐기는 고즈넉하고 은밀한 휴식이 어울리는 곳이다.
국내 연예인들의 신혼여행이나 밀월여행지로 각광받는 것도 이 때문.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경비행기로 1시간10분 정도를 날아가면 이곳 엘 니도 공항에 도착한다.
공항이래봐야 평지에 달랑 오두막 사무실 한채.
하지만 승객들은 비행기를 나서는 순간부터 빼곡한 야자나무 너머로 펼쳐진 풍광에 매료된다.
엘 니도의 섬들중 리조트가 있는 곳은 "미니록"섬과 "라겐"섬 두곳이다.
공항에서 이곳까지는 필리핀 전통 목선인 "방카"로 이동한다.
20분 정도 엘 니도의 바다를 가로지르면 선착장에서 현지 직원들의 환영 노래가 들려온다.
미니록리조트가 초가를 얹은 지붕에 대나무 벽으로 토속적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라겐 리조트는 현대식 시설을 갖춰 깔끔한 느낌을 준다.
내부에는 모두 냉방과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단 TV와 전화는 없다.
숙소는 수상가옥인 워터 코티지(Water Cottage)와 절벽 밑의 클리프 코티지(Cliff Cottage) 등 여러가지 타입으로 나뉘며 2인용, 가족용 등 인원구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리조트 두곳 모두 각종 해양스포츠와 호핑투어 등 프로그램을 무료로 진행한다.
사실 거창한 해양스포츠는 필요없다.
스노쿨링이나 스쿠버다이빙, 피시피딩(물고기 먹이주기)을 통해 접하는 화려한 수중경관만으로 벅차다.
바람부는 날에는 윈드서핑도 그만이다.
각 프로그램마다 안전요원들이 보조를 해줘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속체험 못지 않게 호핑투어의 즐거움도 크다.
방카를 타고 산호호수인 "라군지대"와 모래톱이 두섬을 연결해 놓은 "스네이크아일랜드", 2차대전때 전사한 군인들의 인골이 남아 있는 해안동굴 등을 탐험한다.
팡갈루시안 섬에 들러 산 정상 조망대에서 엘 니도 군도의 전경을 만끽할 수도 있다.
신혼부부들에게 최고 인기 프로그램은 무인도 탐방.
배로 10~20분이면 주변의 무인도 해변에 도착한다.
그 이후 2~3시간 동안은 둘만의 세상이다.
미리 예약하면 무인도에서 뷔페식을 즐길 수 있다.
간혹 2인승 카약으로 "몰래" 무인도에 다녀오는 용감한 커플도 있다.
바다에서 돌아와 나른한 휴식에 빠져들때 쯤이면 선셋크루즈(Sunset Cruise)를 떠나는 배가 신호를 알린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엘 니도 여행의 하이라이트.
낙조가 서지나해를 붉게 물들이고 어둠이 섬들을 하나씩 집어삼키고 나면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 이국의 정취를 더해준다.
/엘 니도=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