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12월 결산 상장·등록기업들의 상반기 경영실적은 한마디로 실망스런 것이라 하겠다. 보기에 따라서는 명암이 엇갈렸다고 자위할수도 있겠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내수기업은 웃고 수출기업은 울었다'는 식의 표현으로 얼버무릴수만은 없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상장기업의 매출은 4.45%가 늘었지만 순이익이 31.12%나 감소한 것은 헛장사를 했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상반기중 1천원어치를 팔아 34원을 남겼다고 하니 52원을 남긴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기업들의 수익성이 얼마나 급락했는지 짐작이 간다. 경기침체에다 환율상승에 따른 환차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구조조정 및 금리하락에 따른 비용감소와 제품가격 인상 등의 플러스 요인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반기실적을 보면서 떠올리게 되는 또한가지 문제점은 경기양극화와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순이익이 9조2천억원에 달했다고 하지만 삼성전자 LG전자 한국전력 국민은행 SK텔레콤 등 상위 5개기업의 순이익이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대다수 기업들은 변변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부 내수위주의 기업들은 비교적 우수한 실적을 올린 것이 사실이지만 제약업은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판매가의 정상화,건설업은 건설경기부양대책 등에 힘입은 바 크다고 볼 때 순수한 기업경쟁력 향상에 의한 실적호전으로 평가하기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순이익이 48.85%나 격감한 제조업체들의 성적표는 비참하기까지 하다. 수출이 부진한 탓이라고는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산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제조업을 이대로 방치해놓고 경제회복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실망스럽기는 코스닥기업도 마찬가지다. 매출은 10.3%가 증가했으나 순이익은 52.2%나 감소했다. 이처럼 수익성이 악화된 것은 주로 벤처기업의 영업이익이 66.8%나 감소한 탓이라고 한다. 옥석을 가리지 않는 벤처육성의 무모함을 다시한번 일깨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기업의 상반기 성적표가 아무리 우울하다 해도 희망의 메시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구조조정에 적극적인 기업,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 단련된 강력한 생존력을 갖춘 기업은 상반기의 혹독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활짝 웃었다는 사실이다. 금융업이 그렇고 자동차가 그렇다. 이제 모든 기업들이 심기일전해 하반기의 알찬 성적표를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