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0:53
수정2006.04.02 00:55
'옷 장사 잘 하려면 하느님과 친해야 한다'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지난 봄·여름 사상 최악의 가뭄 덕분(?)에 선글라스업체와 모자 제조회사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또 이달 초 너무 이르다 싶게 긴팔 옷을 내놓아 주변의 비웃음을 샀던 한 여성복 브랜드는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 기온이 내려가자 가을 초두물량을 모두 팔아치웠다.
하늘을 보며 울고 웃고를 거듭하는 패션인들에게는 경기동향 만큼이나 날씨가 중요하다.
날씨를 정확히 예측해 상품기획과 유통에 반영하는 것이 경영자의 능력으로 평가될 정도다.
패션경영은 날씨경영(Weather Management)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정확한 날씨경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예로는 일본 패션업체 유니클로를 꼽을 수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가을 폴라플리스 점퍼 1천5백만장을 보름만에 완판,최단기간 단일 품목 최대 판매기록으로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유니클로측은 "1천만장이 넘는 어마어마한 물량을 자신있게 만들어 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가을과 겨울 사이의 간절기가 유난히 길어질 것이라는 기상정보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얇고도 포근한 폴라플리스 소재의 특성이 가을도 겨울도 아닌 간절기와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 회사는 이번 여름 습기를 잘 빨아들이고 빨리 마르는 신소재를 활용해 티셔츠를 내놓았다.
무덥고 습한 날씨가 어느때보다도 길었던 여름에 이 신소재 티셔츠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은 물론이다.
반면 영국의 유통업체인 막스앤스펜서는 최근 날씨경영에 서툴렀다는 이유로 CEO를 해임했다.
날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무모하게 의류 생산량을 늘려 재고부담을 증가시키고 결국은 경영을 악화시켰다는 게 그 '죄목'이다.
언뜻 보기엔 날씨에 무관할 것 같은 보석회사들도 기온에 따른 판매변화를 실감한다.
여름에는 차가운 느낌의 화이트골드가,겨울에는 옐로골드가 잘 팔린다.
또 기온이 내려가면 팔찌의 판매량이 뚝 떨어진다.
긴 팔 옷에 가려 팔찌를 자랑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보석회사들은 팔찌의 경우 매장 구석에 들여놓는 대신 옷 밖으로 내놓을 수 있는 디자인의 목걸이 판매에 주력한다고 한다.
국내 패션업체들은 작년 겨울만큼 올 겨울도 추울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오리털파카와 모피등을 대량으로 발주했다.
'제발 추웠으면…'
패션 경영인들은 요즘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