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의 파고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핵심적 연구개발 사업부문에 대해서도 적과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제약업계의 두 선두권 업체가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운 다국적 회사에 맞서 수년째 공동 R&D(연구개발)를 진행하고 있다. 부족한 연구비는 반분하면 부담이 주는 대신 상호 강점은 배가되며 아울러 연구개발기간의 단축이라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디자인 또는 부품개발 차원의 업체간 제휴는 많이 있었으나 핵심적 R&D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은 극히 드문 사례다. 모범적 "적과의 동침"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주인공은 제약업계 부동의 1위인 동아제약과 지난해 간발의 차이로 3위에 머문 유한양행.두 회사는 꼬박 3년6개월째 혁신적 개념의 골다공증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합심 협력해오고 있다. 이 분야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비챰이나 머크 등 내로라하는 다국적 제약사도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난공불락"의 영역이다. 하지만 연구 개발이 어려울수록 이익의 기회는 큰 법.이때문에 두 회사는 지난 98년3월 "신약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고 힘들고 어려운 일에 도전했다. 그 결과 두 회사의 연구진은 최근 신물질의 뼈대가 되는 2가지 계열의 새로운 모핵(母核)물질을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물론 이것만으로 신약 개발에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분자모델 디자인을 개선하고 약리연구를 심화해야하며 독성실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 틀을 갖춘 신약후보물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두 회사가 개발중인 골다공증 치료제는 환자의 뼈를 분해하는 "카텝신-K"라는 효소를 억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치료제다. 카텝신-K효소는 뼈를 녹이는 수소양이온(proton)이 방출되도록 하고 골질의 결합단백질인 콜라겐을 분해하는 작용을 하는 가장 최근에 알려진 골다공증 유발요인의 하나다. 당초 두 회사가 손을 잡게 된 것은 IMF 한파가 계기가 됐다. 서울대 약대 동기인 김원배 동아제약 연구소장과 이종욱 유한양행 연구소장은 공동연구를 진행하면 쪼들리는 연구비를 절감하고 연구인력의 절대 부족을 덜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약리작용과 기초연구가 튼실한 동아제약과 유기합성능력 및 신약후보물질 도출 능력이 뛰어난 유한양행이 손을 잡으면 개발기간이 단축될 것이라는 기대도 한몫했다. 그동안 두 회사는 매달 한번 이상 만나 연구결과를 교환하고 더 나은 연구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수시로 전화와 전자메일로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연구진도가 미진하면 격려와 채찍질도 마다 않는다. 동아제약과 유한양행은 신약개발이 성공하면 특허권과 개발 이익은 사이좋게 나누기로 합의한 상태. 동아제약 김원배 소장은 "두회사의 탄탄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동안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고 좋은 연구성과가 기대된다"며 "연구개발비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유한양행 이종욱 소장은 "IMF 한파를 겪으면서 한동안 자금이나 인력면에서 연구환경이 열악해졌었다"며 "이로 인해 업체간 불요불급한 외형경쟁을 버리고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는 느낌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