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토리] 아홉번 망하고 또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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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에서 벤처기업을 경영하던 유승엽(31)씨가 사업에 실패하자 귀국해 서울 잠실 주공아파트에서 가방 끈으로 목을 매 자살했다.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명문 버클리대 로스쿨에 다니던 그는 친척 친구들로부터 10만달러를 모아 시작한 교육정보 인터넷사업에 실패하자 목을 맨 것이다.
벤처사업이 아까운 인재를 잃게 한 전형적인 케이스다.
참 이상한 것은 벤처나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목을 매 숨을 거둔다는 것이다.
최근 자살한 경남창업투자 사장 손정동(53)씨도 목을 매 자살했으며 기자와 절친했던 김수태 사장도 목을 맨 채 세상을 떴다.
지난주 대구에서 자살한 두 명의 중소기업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왜 도산하면 목을 매 자살할까.
전문가들은 사업에 실패한 사람은 심한 '자책감'에 시달려 다른 방법보다는 목을 매는 자살법을 선택한다고 설명한다.
오죽 자책감이 심하면 목을 매겠느냐마는 이제 사업에 실패한다고 자살하는 일은 정말 없어져야 하겠다.
강서열기의 이영식(65) 사장처럼 아무리 망해도 또 꿋꿋이 일어설 수 있어야 하겠다.
부산 대저동에 공장을 둔 이 사장은 아홉번을 쓰러지고도 열번째 일어난 기업인이다.
지난주 과천정부청사 건너편 식당에서 만난 그는 점퍼에 폴로 모자를 눌러쓴 차림으로 10년 전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하게 당당했다.
그렇지만 그는 또 열번째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유화업체에 8억6천만원 어치의 기기를 설치해줬으나 은행측 실수로 5억원에 이르는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에게 사업이란 참으로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스물두살 때 철공소에서 일하다 한일공업사란 간판으로 철물 공사를 시작한 것이 그의 첫 사업이었다.
1965년 동명목재 플랜트 공사를 맡으면서 서른살에 요즘 벤처기업인 못지않은 부산 갑부가 됐다.
그러나 연쇄 부도를 맞으면서 첫 실패의 쓰라림을 맛봤다.
당시 빚에 시달려 몇 번이나 목을 맬 결심을 했으나 죽더라도 빚은 갚고 죽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보일러 사업으로 그는 다시 성공 기업인이 됐다.
그러나 1977년 3월24일 공장에서 설치작업 중 물탱크가 무너지는 바람에 직원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철창살이'를 하는 동안 공장 허가가 취소되고 재산도 다 날아가버렸다.
그는 영신공업 한진기계 창신기계 등 여러 기업을 연달아 창업했으나 곧 문을 닫곤 했다.
이런 가시밭길에서도 이 사장이 건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두가지라고 한다.
첫째 특허를 다섯개나 획득했을 만큼 앞선 기술을 가진 것과 둘째 어떤 해묵은 빚이라도 찾아가 꼭 갚는 것이었다.
강서열기는 요즘 다기능 산업용 보일러를 개발,곳곳에서 주문받기에 바쁘다.
대금결제 문제만 해결되면 그는 또 당당하게 일어설 것이다.
그는 요즘 실의에 빠진 후배 기업인들을 만나면 이렇게 당부한다.
'죽으면 빚도 못 갚는데이'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